이곤복(1925∼2009)

지난밤 꿈속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다녀가셨습니다. 종종 어머니를 보내시곤 했는데 이번에는 직접 오셨습니다. 경남 합천군이 고향인 아버지는 10대 후반에 인근에 사시던 키 작은 어머니와 결혼하셨고 일자리를 찾아 대구로 넘어와서 6남매를 낳고 사셨습니다. 저는 아버지께서 44세 때 태어난 막내입니다. 30대 후반부터 대나무 관련업을 하셨고 85세로 돌아가시기 두 해 전까지 그 일을 하셨습니다. 그 덕에 저는 6남매 중 유일하게 서울에서 대학을 다닐 수 있었고 제 말투에 경남 사투리가 섞여 있다는 이야기를 듣곤 했습니다.

방학이 되면 대구에 내려와 아버지 일을 거들곤 했는데 조경회사가 대나무를 사 가는 것을 보고 저는 아버지께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저 회사는 우리 대나무를 사 가면 두세 배를 붙여 판다고 하니 우리도 가격을 좀 올려 파십시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그 사람이 몇 배로 돈을 받든 우리는 우리 값만 받으면 된다”고 하셨지요. 작은 이익에 흔들리지 말고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면 된다고요. 그 회사는 오랫동안 물건을 받아갔습니다.

한 가지 기억이 더 있습니다. 제가 “사업하는 것이 너무 어려우니 저는 나중에 크면 임대주택 사서 월세 받고 살 겁니다”라고 하니 “돈이란 사업해서 계속 굴려 돌아가게 해야 나도 좋고 사회도 좋아진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때 수긍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그 순간이 생생히 기억납니다.

아버지께서는 많이 배우지 못하셨지만 그런 생각을 가지고 50년 가까이 일을 하셨습니다. 지금은 사양 산업이 됐지만, 저희 6남매는 아버지가 열심히 일하신 덕에 공부하고 결혼해 지금까지 잘 살고 있습니다.

어느 날 아내가 저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불현듯 묻더군요. 나이 들면서 제 얼굴이 점점 아버님을 닮아간다고요. 자식이 부모 얼굴을 닮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왜 태어난 처음부터가 아니고 나이가 들어야 닮아가는 걸까 궁금했습니다. 시집와서 이미 나이 든 아버지의 얼굴만 보았고 젊을 때 모습은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싶더군요. 아버지께서 늦은 나이에 저를 낳으셨고 남은 사진도 변변치 않아 젊었을 적 아버지 모습을 기억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내가 저를 만난 대학 시절 제 모습에도 아버지 젊었을 때 모습은 분명 있었을 겁니다. 아버지도 뜨거운 청춘이 있었을 테니까요.

단정한 것을 좋아해 이발을 자주 하신 아버지는 이발소를 다녀오시면 특유의 냄새가 났습니다. 아마 머리에 발라주는 머릿기름이었을 겁니다. 그 향이 참 좋았는데 어른 냄새인 것만 같아 나중에 커서 나도 꼭 발라보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그 냄새도 함께 다가옵니다.

‘등이 가려운 소는 언덕이 있어야 등을 대고 비벼서 가려움을 해소할 수 있다’고 하는데 아버지가 떠나신 후에 제가 그 나이가 되어보니 아버지가 바로 저한테는 큰 ‘비빌 언덕’이었습니다. 든든한 언덕이셨던 아버지의 고마움을 이제야 알겠습니다. 그 언덕에서 뛰어놀던 때가 참 행복했고 감사합니다.

막내아들 이창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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