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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묵(1914∼2016)

선생님, 언젠가 아주 오래전에 자작시 ‘해는 동에서’를 낭송하시던 생각이 나네요.

“해는 동에서 뜨는 것이지. 내일도 모레도 해는 동에서 뜨리라. 해 뜨는 곳을 향해 살자. 몸은 비록 서에 있을지라도 마음은 두루 동에 두자. (중략)” 그 목소리의 여운과 시구가 너무 좋아서 그 시가 절절한 향수를 간직하고 있었다는 생각을 그때는 못했습니다. 요즘 같으면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찍어 두면 좋았을 텐데, 참 아쉽습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하룻밤 꿈일지도 모를 선생님의 생애 중, 1969년 아폴로 11호가 달 착륙에 성공한 일이 가장 충격적인 일 중 하나였다고 말씀하시던 일이 엊그제 같습니다.

선생님께, 또 제게 달이란 무슨 의미였을까요? 자유, 무한한 생명, 마르지 않을 사랑, 아마도 결국은 불멸, 그것이었으리라 믿습니다. 선생님을 처음 뵌 건, 지금으로부터 35년 전인 1984년 파리 퐁피두센터 커피숍에서였습니다. 꿈 많은 청년 화가였던 저는 자유와 패기가 온몸에서 목소리와 말에 실려 나오는 선생님의 분위기에 경도되었습니다. 우리는 하염없이 그림 이야기를 하며 센 강변을 걸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화가가 되는 일이 화려함과는 정반대인 고독하고 머나먼 길을 홀로 걷는 일이라는 걸 몰랐습니다.

30여 년째 사시던 파리 한가운데 작은 집, 삐걱거리는 6층 계단을 오르던 기억, 사모님과 함께 셋이 버터와 잼을 발라 먹던 그 신선하고 맛있는, 바삭바삭한 바게트를 어찌 잊을까요? 지금 현세에서 그림값이 비싼 작가가 훌륭한 작가일까요? 선생님과 저는 왠지 세상을 맘껏 같이 비웃어주고 인정할 것은 같이 인정하던, 나이를 초월한 친구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류 최초로 달 착륙에 성공한 닐 암스트롱을 사람들은 많이 기억하지만, 저는 두 번째로 달을 디딘 ‘버즈 올드린’을 떠올립니다. 달에 발을 디딘 그는 ‘황홀한 폐허’라고 감탄했답니다. 그럼에도 인류가 미지의 영역을 탐험하는 순간을 멈추면 인류는 그 순간부터 퇴화할 것이라고 말한 올드린의 말은 늘 새로움을 탐험하는 화가 한묵 선생님을 떠올리게 합니다.

나이 40대 후반, 대학교수직을 버리고 훌훌 파리로 떠났듯 늘 ‘붓대 들고 씩 웃으며 가고 싶다’고 하셨던 선생님은 정말 그렇게 세상을 떠나셨지요. 아마도 이 말은 선생님의 묘비명에 가장 잘 어울릴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 기하학적 추상의 대부라 불리는 선생님의 작품 세계는 폭발하는 생명력으로 가득 찬 4차원의 세계입니다. 선생님을 처음 뵌 1984년 파리에서와 똑같이, 젊을 때도 늙어서도 변함없이, 선생님은 때 묻지 않은 아이의 맑은 영혼과 어른의 넉넉함을 함께 지닌 드문 예술가셨습니다. 선생님이 한 번도 화내는 걸 보지 못한 사람들은 선생님을 ‘한묵, 대인’이라 부르곤 했다지요. 늘 저도 그렇게 늙어 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답니다. 욕심 부리지 않고 천천히 걸어가는 산책자의 삶이라고 해도 좋을까요? 예술이란 결과보다는 프로세스가 아름다운 일임을…, 아니 삶 자체가 그러함을 늘 일깨워주시던 선생님의 노래가 선물처럼 떠오릅니다.

그 노래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아니 노랫말 해독이 불가능한 행진곡 같았습니다. 20대를 만주에서 보낸 100세 노화가의 마음속엔 그 옛날 골목대장 시절, 꼬마들을 진두지휘하며 부르던 낯선 나라의 혁명군가가 남아있었을까요? 어느 먼 달나라의 노래 같은 그 신기한 노래를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부르는 걸 들으며 왠지 선생님은 늙지도 죽지도 않는 신선일 것만 같았는데, 선생님은 붓대 들고 씩 웃으며 이승을 떠나셨습니다. 작년 겨울 시립미술관 전시 때,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제목이 붙어있는 자화상 그림을 한참 동안 멍하니 바라보며 선생님을 뵌 듯 좋았습니다. 우리들 진짜 예술가들끼리는 알죠. 삶과 죽음을 막 뛰어 건너 서로의 영혼이 만난다는 것을요. 꿈에 뵌 선생님은 오늘도 그림을 그리고 계셨습니다. 황홀한 폐허의 달 풍경을요. “와 보니 아무것도 없어. 그래도 지금 이 순간은 늘 시작이지.” 쾌활하고 쩌렁쩌렁한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보고 싶습니다, 선생님.

황주리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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