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투병 중인 이어령 이화여대 명예 석좌교수가 17일 서울 종로구 통인동 ‘이상의 집’에서 열린 강연에서 시인 이상의 문학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앉아 있는 자리 왼쪽)과 김병일(오른쪽) 전 기획예산처 장관이 강연을 경청하고 있다. 김선규기자
암 투병 중인 이어령 이화여대 명예 석좌교수가 17일 서울 종로구 통인동 ‘이상의 집’에서 열린 강연에서 시인 이상의 문학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앉아 있는 자리 왼쪽)과 김병일(오른쪽) 전 기획예산처 장관이 강연을 경청하고 있다. 김선규기자
암투병 중 ‘천재시인 이상’ 특별강연 나선 이어령 교수

“생명은 정보와 의미에 있는것
영원함 없이 모두 죽는 세상서
의미 남기는 것이야말로 중요

아픔에 대해서,괴로움에 대해서
한발짝 더가게 계속 글 쓰겠다”


“죽음에는 생물학적 죽음, 사회적 죽음 등 여러 양태의 죽음이 있지만 이 세상에 죽지 않는 것도 있다. 그런 모델을 한번 보여주고 싶다. 내 생각이 문화유전자처럼 퍼져가는 것, 그것이 나의 바람이다.”

‘이 시대의 지성’으로 불리는 이어령 이화여대 명예 석좌교수가 암 투병 중에도 불구하고 17일 저녁 천재 시인 이상(1910~1937)에 대한 특별강연 연사로 나서 큰 관심을 모았다. 강연은 문화유산국민신탁(이사장 김종규)이 서울 종로구 통인동 ‘이상의 집’에서 마련한 유물공개행사의 축하강연 형태로 열렸다. 86세 고령의 이 교수는 연초에 암 투병 사실을 공개했지만 항암치료나 방사선 치료를 받는 대신 3~6개월마다 건강체크만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연장에서 만난 이 교수는 “내가 환자처럼 병원에 누워 있었다면, 오늘 같은 자리에도 못 나왔을 것”이라며 “병과 친해진다고 해서 투병이라는 말 대신 친병이라는 말을 썼더니 병도 요즘에 친해져서 상당히 가까워졌다”고 말했다. 그는 “생명은 정보와 의미다. 영원한 것 없이 누구나 죽는 세상에서 의미를 남기는 것이야말로 중요하다”며 자신의 생각이 문화유전자처럼 퍼져가는 것, 그것이 자신의 바람이라고 했다.

이어 이 교수는 “카뮈가 ‘내게 희망이 있다. 한 번 더 쓸 수 있는 희망이 있다’고 말한 것처럼 한 번 더 쓸 수 있다면 죽음에 대해서, 아픔에 대해서, 괴로움에 대해서,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에 대해서, 한 발짝 더 갈 수 있기 때문에 계속 글을 쓰겠다”고 말했다. 그는 12권이 목표인 ‘한국론’을 집필 중이며 ‘구술’을 통해서라도 계속 써나갈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강연에서 그는 “이상은 서구 헬레니즘 문화가 그렇듯 철저히 시각적 인간이다. 대표작 ‘날개’도 그렇게 이해해야 한다. 유곽 같은 곳에 누워 있던 이상이 미쓰코시 백화점 옥상에 오르는 것은 ‘수평적 삶’에서 ‘수직적 삶’으로의 이동이다. 그리고 옥상에서 ‘날개야 다시 돋아라. 한 번만 더 날자꾸나’ 외친 것은 옥상에서 떨어져 죽으려는 것이 아니라 다시 수평적 삶, 그렇지만 유곽이 아닌 ‘은행을 가고, 직장을 다니는’ 현실적 삶으로의 귀환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상이 기념관이나 유적 하나 변변한 것이 없지만 27세에 각혈하며 세상을 떠나며 남긴 이상의 작품이 ‘오늘의 한국’을 있게 한다는 점에서 독립유공자 못잖은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행사에는 정재숙 문화재청장, 이홍구 전 총리, 김병일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전 기획예산처 장관), 유진룡 수림문화재단 이사장(전 문화부 장관), 이건무 전 문화재청장, 연극인 박정자, 국악인 장사익, 김원 건축가, 엄재권 한국민화협회 명예회장, 홍일송 전 미국 버지니아한인회장, 배우 겸 사진작가 이광기 등 문화계 인사와 50여명의 문화유산국민신탁 회원이 참석했다.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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