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사태로 올해 신문 지면을 휩쓴 유행어 내로남불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첫음절만 따서 만든 4자 성어다. 그런데 이제는 첫음절이 아니라 아예 초성 자음만 따서 사회관계망 소통을 하기도 한다. 대한민국을 ‘ㄷㅎㅁㄱ’으로 표기하는 식이다. 이런 준말 표기는 오래전 공산사회 북한에서 있었다. ‘ㅌㄷ’은 그중 하나다. 타도제국주의동맹의 첫 단어 약칭이다. 이름만으로도 섬뜩하다. 북한 사회에는 ‘사십구호병원(정신병원)의 싸쓰개(정신병자)’ ‘각을 뜨겠다’(사지를 찢어죽이겠다)는 살기 어린 욕말도 있다.
지금 북한의 ‘완장’들은 3대 세습권력을 지켜내기 위해 ‘원쑤’(怨讐)들을 향해 폐부를 찌르는 섬뜩한 말들을 마구 쏟아내고 있다. 그로써 충성경쟁을 하는 것이다. 당 일꾼들이 생질을 떼는(엄청 고생하는) 와중에 삶은 소대가리가 웃다가 꾸레미(부리망)가 터질 말도 더러 나온다. 졸개들이 내뱉는 말 중에는 무척 어이없고 가소로운 언사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의 ‘국무위원장’ 김정은이 지난 4월 13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오지랖 넓은 중재자·촉진자 행세를 말라고 ‘남쪽 대통령’에게 경고를 날렸다. 넉 달 뒤인 8월 16일에는 대남 기구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대통령을 향해 ‘정말 보기 드물게 뻔뻔스러운 사람’ ‘아랫사람들이 써준 것을 그대로 졸졸 읽어내리는 남조선당국자’라고 원색적인 비난을 해댔다. 세상에 이보다 무례한 말을 공공연히 쓰는 집단이 또 있을까 싶다.
지난 18일에는 북한의 대남 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가 나서서 ‘스스로 제 발에 족쇄를 채우고, 미국 상전의 눈치를 보지 않으면 안 되는 식민지 하수인’이라고 남쪽을 향해 또 비난을 퍼부었다. 지금까지 언론에 보도된 삶은 소대가리, 멍텅구리, 바보, 구걸 같은 독설들은 무례할 뿐만 아니라 고의적이고 공격적인 화술(話術)의 일종이다. 인권의 초성 ‘ㅇ’자도 찾아볼 수 없는 북한과의 관계에서 협상 파트너에 대한 점잖은 말을 기대하기보다 살인강도에게 목숨을 구걸하는 편이 쉬울 것이다.
이쯤에서 궁금증이 하나 생긴다. 대한민국 정부와 청와대는 ‘입’이 없는가. 왜 일언반구 항의나 경고도 하지 않는가. 중매에 실패한 월하빙인(月下氷人)의 ‘뺨 세 대’가 무서워서인가. 아니면, 무슨 말 못 할 사연이라도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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