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의 독립운동가’ 정용기선생
‘6·25 전쟁영웅’엔 박평길 병장
국가보훈처와 광복회, 독립기념관이 공동으로 선정한 ‘1월의 독립운동가’인 정용기 선생은 광무황제(고종)로부터 의병 봉기의 밀지를 받은 부친 정환직(큰 사진 왼쪽) 선생과 함께 경북 영천을 중심으로 의병 부대 ‘산남의진(山南義陣)’을 결성한 의병 대장이다. 정용기 선생은 부친과 함께 고향인 영천으로 내려가 1906년 1월 ‘영천창의소’를 설치했다. 영남지역에서 1000여 명의 의병이 모집됐고 선생은 대장으로 추대됐다. 신돌석 의병대장과 연합작전을 펴고자 서울로 진군하던 중 관군에 붙잡혀 대구 감옥에 수감돼 4개월간 고초를 겪고 석방됐다. 이후 선생은 대구에서 광문사 김광제 사장과 서상돈 부사장 등과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했다. 1907년 4월 의병부대를 재결성해 청하·영천·청송 등지로 진군하면서 일본군과 여러 차례 전투를 벌여 적군을 사살하는 전과를 거뒀다. 의병부대 본진 병력 150여 명을 이끌고 경북 청하군(현재 포항 북구 일대)으로 이동해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다가 1907년 9월 장렬히 전사했다.
고종의 시종관(侍從官)을 지낸 부친 정환직 선생은 아들의 뒤를 이어 의병 대장을 맡았으나 일본군 영천수비대에 붙잡혀 대구로 압송 중 순국했다. 정환직 선생은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정용기 선생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조직해 영천성을 탈환한 의병장 정세아의 11세손이다.
박평길 병장은 6·25전쟁이 발발하자, 부인과 자녀를 남겨 두고 1950년 9월 1일 육군에 입대했다. 그해 10월 제11 보병사단 13연대 3대대 9중대 2소대에 편성돼 전북지역의 북한군 패잔병 소탕작전에 투입됐다. 이듬해 6월 강원 고성군 수동면 564고지 전투에서 대퇴부에 총탄을 맞아 부상했으나 굴하지 않고, 적의 사격 진지 근처까지 달려가 수류탄을 던져 적군 10여 명을 폭사시켰다. 이어 적군과 백병전을 치르는 과정에서 적탄에 맞아 25세 젊은 나이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충신 기자 csju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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