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는 현재 외환은행(론스타), 삼성물산(엘리엇·메이슨) 등 10여 건의 ISD(Investor-State Dispute) 분쟁에 처해 있다. ISD란, 해외 투자자가 투자 상대국의 법령·정책 등에 의해서 피해를 보았거나 투자 상대국이 협정상 의무나 투자계약을 위반해서 손해를 본 경우, 해당 투자기업이 아니라 투자 상대국 정부를 상대로 세계은행(IBRD) 산하의 민간기구인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국제중재를 신청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세계적으로는 1966년에 맺어진 ‘국가와 다른 국가의 국민 간 투자분쟁해결에 관한 협약’(워싱턴협약)에 의해 도입되기 시작했으며, 우리나라는 2012년 한·미 FTA 체결 때부터 ISD 조항이 포함돼 현재까지 적용 대상국이다. 국제기구의 중재절차가 본원적으로 강대국과 약소국 간의 분쟁에서 중립적이지 못할 가능성이 있지만, 국가적 차원에서 대비하지 않으면 궁극적으로는 국민 세금으로 막아야 하는 중대한 사안이다.
민간 투자 및 기업 경영과 관련한 의사결정에 있어 정부의 영향력이 커지면 해외 투자자들이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벌일 가능성도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현 정부에서는 대기업의 책임 있는 자세와 대주주에 대한 경영 책임을 묻기 위한 다양한 규제 방안을 도입함은 물론 대주주의 중대한 탈법 및 위법 행위에 대해서는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적극 행사해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런 부분들이 ISD 관점에서는 매우 걱정스럽다.
국민연금기금은 1988년 출범 당시 약 5300억 원에 불과했지만, 1994년 10조, 2003년 100조, 2015년 500조, 현재는 700조 원을 넘었다. 현재로도 국민연금은 국내총생산(GDP)의 약 40%이며,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 시가총액의 2배가 넘는다. 국민연금이 5% 이상 주식을 보유한 국내 기업의 수는 이미 300개를 넘었고, 시가총액 기준으로도 10%를 초과해, 국내 주식시장에서는 국민연금이 작심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독보적 존재로 성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영향력 행사는 ISD 분쟁의 좋은 소재가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전과 같은 공기업의 경우엔 구조적으로 정부가 대주주의 지위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주주의 권익을 침해하는 중요한 의사결정을 정부가 주도하면, ISD 분쟁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매우 커진다. 한전은 탈원전 정책과 한전공대 설립 등을 추진하면서 지난해 부채 총액이 114조 원으로 늘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한전은 뉴욕증시에도 상장된 기업이어서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서 외국인 투자자의 의견을 외면하기 어렵다.
ISD가 독소 조항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한국에도 꼭 필요한 조항이다. 국민연금의 규모가 늘어나는 속도는 계속 빨라져서 2025년에는 1000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성장 속도 때문에 국민연금은 해외 자산을 계속해서 발굴해야 하는 상황이며, 이미 해외 자산의 비중이 30%를 넘었다. 따라서 ISD 조항이 없다면 우리 역시 국민연금이 투자한 해외자산을 보호할 방법이 없다.
결국, 시장 원칙을 충실하게 지키는 방법밖에 없다. 기업이 자율적인 의사결정을 통해 주주의 가치를 보호하고 시장 원리를 지킬 수 있도록 정부와 국민연금도 협력해야 한다. 이런 기본 원칙을 지키지 않아서 해당 기업의 재무 성과가 나빠지거나, 투자 자산에 손실이 발생하면 결국 국민 세금으로 메워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