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넌 계획이 다 있구나”
어벤져스 “3000만큼 사랑해”
TV보다 영화 대사 히트 많아
SNS선 신조어·줄임말 대세
진짜 →‘찐’ 재료품질 →‘재질’
부를 과시하다 →‘플렉스했다’
“2019년을 관통한 유행어를 하나 추천해달라.”
지인 몇 명에게 이 질문을 던졌다. 곧바로 답을 턱 내놓는 이들은 없었고, 고민 끝에 내놓은 답도 사뭇 달랐다. 과거 유행어가 주로 TV를 중심으로 대중이 대동단결했던 것과 달리, 이제는 세대별로 보고 듣고 즐기는 플랫폼과 콘텐츠가 크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누군가 한마디 딱 던졌을 때, 대다수가 그 의미를 알아챌 만한 2019년의 유행어를 짚어봤다.
◇TV→영화·SNS, 유행어 산실의 변화
오랜 기간, TV는 유행어의 산실이었다. 시청률 50%가 넘는 드라마, 20% 안팎의 예능이 즐비하던 때만 하더라도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유행어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시크릿가든’(2010)에서 “이게 최선입니까?”라는 유행어를 낳았던 배우 현빈이 주연을 맡은 tvN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이 방송되고 있지만 아직 별다른 대사가 떠오르지 않았다. 또한 유행어가 봇물처럼 터지던 KBS 2TV ‘개그콘서트’ 역시 이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다.
반면 10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으는 영화 속 대사는 입에서 입으로 전파되고 있다. 올해 초 1626만 관객을 모은 영화 ‘극한직업’에 등장한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라는 대사는 “지금까지 이런 OOO은 없었다”는 식으로 다양하게 변주됐다. 이 바통은 한국 영화 최초로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거머쥔 ‘기생충’ 속 기택(송강호)의 “넌 계획이 다 있구나”가 이어받았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어벤져스:엔드게임’에서 토니 스타크가 남긴 “3000만큼 사랑해” 역시 상반기를 대표하는 유행어로 자리매김했다.
유행어를 전파시키는 매개체의 역할도 TV에서 SNS로 바뀌었다. 하반기에는 2006년 개봉작인 ‘타짜’ 속 조연 곽철용(김응수)의 대사인 “묻고 더블로 가”와 “마포대교는 무너졌냐”가 뒤늦게 인기를 얻었다. 이는 두 번째 속편인 ‘타짜:원 아이드 잭’의 개봉에 맞춰 유튜브 등에서 곽철용 다시보기 열풍이 불면서 벌어진 현상이다. SNS를 활용해 누구나 쉽게 13년 전 콘텐츠인 ‘타짜’를 다시 볼 수 있게 되면서 ‘유행어 역주행’ 사례를 낳은 셈이다.
연말 각종 설문조사에서 ‘올해의 인물’ 1위에 뽑힌 EBS 캐릭터 펭수의 인사법인 “펭하”(‘펭수 하이’의 준말) 역시 2030 직장인들이 자주 사용한 유행어다. 펭수 역시 유튜브 채널에 기반을 둔 콘텐츠를 통해 대중의 사랑을 받은 것을 고려할 때 EBS라는 ‘TV’가 아니라 유튜브라는 ‘SNS’가 탄생시킨 스타라 할 수 있다.
유행어의 산실로서 그나마 TV 프로그램의 자존심을 세워준 주인공은 트로트 열풍을 일으킨 TV조선 ‘미스트롯’에 출연해 “송가인이어라∼”를 외친 가수 송가인이었다.
◇유행어 시장 잠식한 줄임말·새로운 의미 부여
몇 해 전부터 유행어 시장에서는 각 단어의 앞글자를 딴 줄임말이 대세다. 한글을 파괴하는 ‘외계어’, 혹은 급식을 먹는 학생들이 사용하는 ‘급식체’로 불리기도 했지만 이제는 각종 SNS를 통해 널리 쓰이는 간결하고 경제적인 표현으로 통용되는 분위기다. 또한 기존의 단어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 유행어도 급증하고 있다.
올해 새롭게 주목받은 줄임말로 ‘찐’을 꼽을 수 있다. ‘진’을 강하게 발음한 것으로, “진짜다” “대단하다” 정도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옷은 찐이다”는 “이 옷은 정말 예쁘다” 혹은 “이 옷은 정품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신세대들은 패션에 대해 논할 때 ‘꾸안꾸’도 자주 쓴다. 이는 ‘꾸민 듯 안 꾸민 듯’의 준말로 딱 적당한 패션 센스를 가진 이들을 칭찬하는 표현이다. 이외에도 겨울이 되면서 자주 쓰이는 ‘얼죽코’ ‘얼죽아’는 ‘얼어 죽어도 코트(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줄인 것으로, 추워도 코트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고집하는 이들을 표현하는 신조어다.
각 단어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 사례로는 ‘재질’과 ‘플렉스’가 있다. “재질 걍 미쳤음”(재질이 너무 좋다)은 요즘 10대들이 많이 쓰는 표현 중 하나다. ‘재료의 품질’을 뜻하는 재질을 활용한 표현으로, 어떤 대상을 칭찬할 때 이같이 쓴다.
플렉스(flx)는 ‘힘을 주다’ 등의 사전적 의미를 갖는데, 1990년대 미국 힙합 시장에서 ‘부를 과시하다’라는 의미로 썼다. 최근 래퍼 염따가 SNS에서 “플렉스해버렸다”고 자주 쓰던 것이 유행이 됐다. 빼어난 외모나 재력을 드러내는 것이 자연스러워진 최근의 분위기와 맞물려 SBS 예능 ‘이동욱은 토크가 하고 싶어서’에서는 아예 ‘플렉스 코너’를 만들기도 했다.
이외에도 90년대 가요 프로그램을 보여주는 유튜브 채널이 ‘온라인 탑골공원’이라 불리며 2019년을 뜨겁게 달궜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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