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종 논설위원

한국 국회는 1987년 직선제 헌법 개정, 국회 인사청문회 도입(2000년), 국회 선진화법(2012년) 등을 통해 제도적인 진전을 이루면서 의회(議會) 민주주의 모범국을 자임해 왔다. 그러나 20대 국회 후반기에 벌어지는 황당한 4가지 장면은 국회가 퇴행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더욱이 이를 여당이 주도하고 있어 그 심각성을 더한다.

우선 박정희 정권 때 없어졌다가 지난 2012년 선진화법 도입으로 부활한 필리버스터, 즉 소수 야당의 합법적 의사 진행방해(국회법은 ‘무제한 토론’)에 여당이 끼어드는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지난 23일 시작된 선거법에 대한 필리버스터에서 문희상 의장은 애초 이를 신청한 자유한국당뿐만 아니라 더불어민주당과 다른 야당에도 기회를 줬다. 필리버스터는 소수당이 다수당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한 무기인데 여당이 이를 가로채는 상황이 벌어졌다. 지난 2016년 테러방지법 상정 때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 등이 192시간 필리버스터로 지지율을 끌어올렸는데, 한국당의 독무대가 될 것을 우려한 여당이 꼼수를 부린 것이다. 둘째, 살라미 임시국회다. 원래 국회의 회기는 30일인데 여당이 패스트트랙 안건을 처리하기 위해 3∼4일 단위의 짧은 임시국회를 계속 소집할 태세다. 필리버스터를 한번 한 법안은 다음 임시회 때는 하지 못하는 점을 악용,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검경 수사권 조정법안 등을 이런 방식으로 처리하기 위해 5∼6번의 짧은 임시회를 잇달아 소집한다는 것이다. ‘살라미 전술’은 북한의 전유물이 아닌 셈이다.

셋째, ‘듣보잡’ 위성(衛星)정당 출현 가능성이다. ‘4 + 1 협의체’가 통과시킨 연동형 비례제에 따르면 지역구에서 상당수 의석을 차지한 정당은 비례대표를 배분받을 수 없다. 이 때문에 한국당은 비례정당을 만들어 지역구는 후보자를 내지 않고 비례대표만 낼 방침이다. 이럴 경우 ‘4 + 1 협의체’가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한국당이 최대 이득을 볼 수 있다. 알바니아, 베네수엘라 등에서 한때 실시하다 부작용이 많아 폐지했던 선거법을 역수입한 셈이다. 넷째, 앞으로 3종류의 국회의원이 탄생한다. 지역구, 일반 비례대표, 연동 비례대표다. 석패율이 도입되지 않아 ‘석패 의원’은 없지만, 의원 종류도 기네스북감이다. 아마 세계 정치학계에서 ‘의회 민주주의 퇴행’의 주요 연구대상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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