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은 못 믿어도 관객은 믿는다는 박정자 배우는 관객의 박수와 환호를 받을 때가 가장 황홀한 순간이라고 했다.
자신은 못 믿어도 관객은 믿는다는 박정자 배우는 관객의 박수와 환호를 받을 때가 가장 황홀한 순간이라고 했다.

박정자 배우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 ‘19 그리고 80(헤롤드&모드)’. 죽음을 생각하는 19살 청년과 삶을 이야기하는 80살 모드의 사랑과 우정을 그린 작품. 2015년 강하늘과 함께 무대에 섰다. 그는 80살이 되는 해, 윤석화 연출로 이 작품을 다시 올린다.
박정자 배우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 ‘19 그리고 80(헤롤드&모드)’. 죽음을 생각하는 19살 청년과 삶을 이야기하는 80살 모드의 사랑과 우정을 그린 작품. 2015년 강하늘과 함께 무대에 섰다. 그는 80살이 되는 해, 윤석화 연출로 이 작품을 다시 올린다.
강렬한 카리스마의 배우 박정자가 처음 연극과 만난 것은 1950년, 아홉 살 때였다. 극단 신협의 연구생이었던 오빠 박상호(1931∼2006) 덕분에 부민관에서 유치진 극본의 ‘원술랑’을 봤다. 박정자는 7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 순간을 오롯이 기억한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고 무대가 그를 에워싸면서 자신의 우주가 되는 것을 경험했다고 한다. 인생을 통틀어 가장 견고한 각성을 자아냈다고 한다. 아홉 살에 견고한 각성이라니. 이때부터 그의 운명은 연극에 매인 듯하다.

그의 연극 삶의 또 다른 분기점은 1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동아방송 공채 1기 성우에 합격한 일이었다. 성우는 당시 최고 인기 직업이었는데, 그가 이화여대 중퇴를 감수하고 성우의 길을 택한 것은 목소리로 하는 배우, 결국 배우라는 직업 때문이었다. 데뷔작은 이화여대 문리대 시절 연극반에서 올린 ‘페드라’, 프로 정식 데뷔는 1965년 ‘악령’이었다. 그 후 그는 한 해도 쉬지 않고 무대에 올랐다. 오십견으로 팔을 움직일 수 없을 때도, 발등뼈에 금이 가서 발이 이스트 넣은 빵처럼 부풀어 올랐을 때도, 그 전날 넘어져 입안에 십여 바늘을 꿰매고도 어김없이 무대에 올랐다. 셰익스피어, 사뮈엘 베케트, 이오네스코, 가르시아 로르카의 고전 작품부터 한국의 대표적 창작극까지, 묵직한 작품부터 경쾌한 작품까지 다양한 작품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1990년 ‘대머리 여가수’ 공연으로 겨우 50만 원의 개런티를 받곤 연극배우는 사람인가, 이런 열정과 시간을 다른 데 투자했더라면 아무리 멍청이라도 지금보다 부자가 됐을 거라며 마음속으로 울었지만 그런 날도 그는 연극 표를 팔았다. 내심 왕비역을 기대했지만 광대패 우두머리역을 맡아도 운명으로 여겼고 무대에 올라 한바탕 혼신의 힘을 쏟고 나면 왕비가 아니라 광대 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왕비도 할 수 있고 창녀도 할 수 있고, 세상 모든 배역을 다 할 수 있고, 또 잘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고 또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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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서울 출생 △진명여자중·고 졸업 △1961년 이화여대 신문학과 입학 △1962년 ‘페드라’의 시녀 역으로 데뷔 △1963년 동아방송 공채 1기 성우 △1966년 극단 자유 창단 구성원 △‘햄릿’ ‘오이디푸스’ ‘피의 결혼’ ‘위기의 여자’ ‘신의 아그네스’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 ‘19 그리고 80’ 등 200편 가까운 작품에 출연 △김기영 감독의 ‘육체의 약속’ 등 다수의 영화 출연 △동아연극상, 백상예술대상, 이해랑 연극상, 대종상 여우조연상 등 수상.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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