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의회 ‘교육감에 개방권한 부여’ 조례 통과

“체육동호회 민원해결용” 지적
학교·정치권 오랜 갈등 요인
2016년엔 교육계 반대로 철회


서울시의회가 ‘학교 개방’ 권한을 교육감에게 주는 조례를 통과시켜 교육계가 “학생 안전보다 표를 먼저 생각하는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그동안 학교 운동장이나 체육관 개방은 학교 선택에 맡겨왔는데, ‘선출직’ 교육감이 ‘강제 개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지역사회 여론을 주도하는 체육동호회 등을 의식한 ‘민원 해결용’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울시교육청도 서울시의회에 해당 조례 철회를 요구키로 했다.

31일 교육계에 따르면 시의회는 지난 20일 학교시설 사용 허가를 교육감이 직접 행사할 수 있는 내용의 ‘서울시교육감 행정권한 위임에 관한 조례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학교가 주차장이나 체육시설을 외부에 개방하고 싶지 않더라도, 교육감이 행정권을 발동하면 무조건 개방해야 한다는 것이다.

겉으로 볼 땐 권한의 문제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학교와 지역 정치권의 오랜 갈등이 숨어 있다. 학교는 외부인에 의한 성범죄나 학생들의 학교시설 이용 제한 등을 우려해 개방을 꺼리는 반면, 시의회 등 정치권은 축구, 배드민턴, 농구 등 생활체육 동호회들이 운동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개방을 압박하고 있다. 특히 운동장이나 체육관은 대관료가 시간당 1만5000원∼4만 원으로 낮아 일부 학교는 ‘대관 경쟁’이 붙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보통 1년 단위로 계약을 하다 보니 “한 곳이 독점한다”며 갈등이 빚어지는 경우도 있다. 도심 지역 학교는 주변의 교회, 회사 등으로부터 주차장 사용을 요구받기도 한다. 이 때문에 학교 대부분은 학부모 등의 의견을 받아 학교 시설을 제한적으로 개방하고 있다.

실제 용산구의 A 초교는 2년 전까지 주차장을 개방했다가 이용자들이 사용시간을 지키지 않아 등·하교 학생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일이 발생해 현재는 문을 걸어둔 상태다. 체육관은 성인 농구팀에, 운동장은 조기축구회에 내어주고 있지만 매번 ‘어른들의 비매너’로 골치가 아프다. 이 학교 관계자는 “선거 때만 되면 시의원들로부터 더 많이, 자주 개방하라는 압박을 받는데, 예산으로 협박하기도 한다”며 “운동 후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거나 술을 마시고 빈 병을 치우지 않아 학생들이 치우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강남의 B 초교도 최근 배드민턴 동호회로부터 체육관 개방을 요구받았지만, 학부모들은 반발하고 있다. 이 학교 교장은 “학교 입장에서는 개방할수록 손해인데 개방을 강요하는 건 일종의 갑질”이라며 “조례가 시행되면 표심이 중요한 교육감도 무조건 개방 압박을 받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의회는 지난 2016년에도 학교시설 개방을 의무화하는 조례를 통과시키려다 교육계 반대로 철회한 바 있다. 이번에도 서울시교육청은 이 조례가 “학교 자치 훼손, 법령 위반 소지가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교육청은 오는 1월 9일 내로 재의 요구를 한다는 계획이다.

윤정아 기자 jayoon@munhwa.com
윤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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