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의 개인식별제도

세계 각국에는 다양한 방식의 개인식별제도가 있다. 여러 국가에서 개인식별번호는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제한적으로 이용된다. 조세, 복지 영역에서 목적별 번호가 이용되기도 한다.

영미권 국가들은 특정 목적의 번호를 개인식별번호로 사용한다. 미국에서는 사회보장법에 따라 조세 부과, 납세자 확인을 위해 행정부가 부여한 사회보장번호(SSN)가 여권, 조세, 복지, 금융 등의 영역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SSN은 지역번호, 집단번호, 일련번호의 9자리 숫자로 구성된다. 영국에서는 국가보험번호(NIN)가 개인식별번호의 역할을 하며 고용, 조세, 연금 등 정부 기관에서만 엄격하게 사용된다. 국가신분증은 존재하지 않고 신원을 확인할 때에는 운전면허증을 사용한다. 캐나다도 사회보장제도를 위한 사회보험번호(SIN)가 조세, 교육, 금융, 선거 영역에서 쓰이고 있다.

개인식별번호가 있지만 이와 다른 목적별 번호를 더 많이 사용하는 나라도 있다. 독일은 개인식별번호이자 신분증인 ID 카드·번호의 이용범위를 극히 제한하고 있다. 대신 납세자번호, 공공건강보험번호, 법정연금보험번호 등을 다양하게 사용한다. ID 번호가 신원 확인에 이용되지만 별도로 저장되거나 목적별 번호와 연동되지는 않는다. 일본의 주민등록코드는 단지 공공행정기관에서만 수집, 이용할 수 있다. 조세, 복지, 건강보험 등 각 영역에서는 고유의 식별번호를 사용해왔다. 2016년부터 ‘마이 넘버’라는 별도의 개인식별번호를 도입했는데 강제성이 없다. 희망자에게만 자율적으로 발급해 2017년 8월 기준 카드 발급률은 9.6%에 불과하다.

개인식별번호가 아예 없는 국가도 있다. 헝가리에는 개인식별코드가 존재했지만 1991년 헌법재판소가 이를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이후 헝가리 정부는 목적에 따라 개인식별자와 사회보장·조세식별코드를 이용하고 수집 범위를 제한하고 있다. 모든 국민에게 의무적으로 부여되는 개인식별자는 신분증에 포함되지 않는다. 호주 정부는 1980년대에 개인식별번호의 도입을 시도했으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무산됐다. 이에 따라 의료서비스 제공을 위한 의료카드번호, 조세를 위한 세금납부번호, 사회보장 서비스를 위한 식별번호 등 다양한 번호가 존재한다. 필리핀은 1990년대 보편적 개인식별번호 도입을 시도했다가 소송이 제기된 후 계획이 폐기됐다. 이에 따라 세금에는 조세식별번호, 복지에는 건강번호를 사용한다.

한국과 같이 개인식별번호가 광범위하게 이용되는 곳도 있다. 동유럽과 중남미, 아프리카 국가들이다.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말레이시아, 우간다에서는 개인식별번호가 다양한 범위에서 사용된다. 루마니아, 체코에서는 개인식별번호가 태어날 때 의무적으로 부여돼 변경할 수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80%에 달하는 28개국이 모든 국민에게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고유번호를 부여하고 있다. 생년월일 등 개인정보를 포함하고 있는 OECD 회원국은 17개국으로 전체의 61%를 차지한다. 개인식별번호에 지역정보와 일련번호를 사용하는 OECD 회원국은 3개국인 11%다. 네덜란드, 스위스, 이탈리아, 일본, 터키, 포르투갈, 아일랜드, 이스라엘 등 8개국(28%)은 개인정보가 포함되지 않은 무작위 임의번호로만 개인식별번호를 운영한다.

정유정 기자 utoor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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