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나 / 오호선 글, 정진호 그림 / 길벗어린이
건축학에서 출발했으나 방향을 넓혀 철학자이자 인지과학자로 살았던 소흥렬 교수는 자신의 심리철학 개념을 공간에 비유해 설명하곤 했다. 공간을 이해하듯이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바라보면 철학의 많은 문제가 풀린다는 것이다. 건축을 공부했던 정진호 작가의 그림책을 읽는 중요한 열쇠도 공간 안에 있다. 어린이들은 정진호 작가를 통해서 자신이 살고 있는 공간을 해석하고 주인공의 마음을 읽는 새로운 방법을 배운다. 그림 기호의 의미를 이해함과 더불어 평면이 아니라 입체적이고 물리적인 방식으로 세계를 보는 눈을 갖게 된다.
이 책의 오른쪽 면은 상상의 공간이어서 거기서 불도 나고 세찬 물줄기도 쏟아지지만 왼쪽 면으로는 넘어오지 않는다. 이수지 작가가 경계 그림책에서 처음 시도했던 방식의 즐거운 오마주다. 어느덧 두 사람이 문답으로 시작한 상상의 서사는 현실 공간을 압도해버리고 아이와 아빠는 죽음 너머의 시간까지 떠올려보게 된다. 공간의 변화에서 시작돼 도달한 시간의 서사는 둘의 자리를 뒤바꿈으로써 절정에 이른다. 아빠는 아이가, 아이는 아빠의 마음이 돼 보는 것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是枝裕和) 감독의 모녀관계에 관한 영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의 그림책 판이라고 할까. 두 사람이 하늘나라에서 존재를 바꾸는 그 상상의 순간은 어른, 아이의 벽을 넘어 두 존재가 나란히 마주 보는 감동적인 장면이다. 오호선 작가의 사려 깊은 글과 정진호 작가의 그림은 그림책이라는 물리적 공간에서 멋진 하나가 됐다. 크리스마스 특별판 표지에는 또 다른 재미가 깃들어 있다. 새해를 맞아 가족의 의미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그림책이다. 1만3000원.
김지은 서울예대문예학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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