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선글라스를 멋지게 끼고 다니시던 아버지, 아직도 멋진 아버지의 모습이 마치 어제 본 것처럼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우리 아버지께서는 참으로 낭만적인 분이셨습니다. 가죽 재킷을 즐겨 입으셨고, 근사한 안경과 선글라스를 끼고 다니셨지요. 아버지께서는 미8군에 근무하면서 서양 문화에 익숙하셨습니다. 그런 아버지 덕분에 우리 삼 남매도 어깨너머로 일찍이 문화적 소양을 기를 수 있었습니다. 집에 있는 라디오에서는 늘 클래식 음악과 팝송이 흘러나왔습니다. 주말이면 아버지께서는 우리 삼 남매를 데리고 어머니와 함께 영화관에 가시곤 했죠. 어린 시절 본 영화들이 모두 기억 나진 않지만 그때 기른 문화적 소양으로 여전히 책과 문화를 가까이하며 살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아버지.
어린 시절 나의 첫 기억은 세 살 무렵일까요. 아버지께서 경기 연천군 대광리에 있는 부대로 발령받아 아버지 손을 꼭 붙잡고 새벽에 기차를 타고 이사 가던 날입니다. 그곳에서는 봄이면 미군들이 진달래를 엮어 던져주곤 했죠. 그러다 다시 고향인 춘천에 돌아와 막냇동생이 태어났습니다. 평소 개를 참 좋아하셨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세터종 강아지 ‘샘’을 선물하셨습니다. 샘은 정말 너무도 근사했습니다. 까만 털에는 윤기가 흘렀고 덩치가 커다랬고, 아주 똑똑했습니다. 샘과 함께 우리는 춘천 곳곳을 누비며 유년 시절을 행복하게 보냈습니다. 이 모든 순간을 카메라에 열심히 담아주셨던 아버지. 아버지 덕분에 아직도 어린 시절 사진을 수북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사진을 꺼내어 보면서 아버지를 한 번 더 떠올려 봅니다. 보고 싶습니다.
그런 제가 어느새 훌쩍 커 대학에 입학했고, 결혼했습니다. 첫 아이를 아버지 품에 안기던 날, 아버지께서 참 해맑게 좋아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직장에 다니느라 바빴던 저를 대신해 우리 아이를 자주 돌봐주셨지요. 그 덕에 우리 아들도 아버지를 늘 기억하곤 합니다. 가끔 편찮으시긴 했어도 늘 건강하신 줄만 알았는데… 아버지께서 간암에 걸리셨다는 사실을 알았던 그날은 정말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평소에 좋아하셨던 우리 회사 앞 설렁탕을 마지막까지 사다 드리지 못한 게 아직도 가슴에 못내 사무치게 남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서 어머니를 모시고, 형수와 조카들을 챙기며 늘 고생만 하셨던 아버지. 이제는 모든 고생에서 벗어나 좋아하시던 술도 마음껏 드시면서 즐겁게 보내고 계시죠? 늘 보고 싶습니다. 여전히 선글라스를 낀 ‘멋쟁이’ 아버지 모습 그대로일 것만 같습니다. 사랑합니다.
큰딸 성희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그립습니다’사연, 이렇게 보내주세요
△ 이메일 : phs2000@munhwa.com
△ 카카오톡 : 채팅창에서 ‘돋보기’ 클릭 후 ‘문화일보’를 검색. 이후 ‘채팅하기’를 눌러 사연 전송
△ QR코드 : 독자면 QR코드를 찍으면 문화일보 카카오톡 창으로 자동 연결
△ 전화 : 02-3701-5261
주요뉴스
시리즈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