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전자제품박람회(CES)는 전자·정보통신기술(ICT) 분야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전에 ICT 분야 취재를 했을 때 두세 번 다녀온 적이 있다. 당시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지금도 그렇지만 우리의 자랑이었다. 특히 삼성전자는 2000년대 중반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하며 노키아(휴대전화), 소니(TV) 등의 뒤꽁무니를 바짝 뒤쫓고 있었다. CES, 스페인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행사장은 한국 기업과 세계 최고 기업 간 추격전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해마다 격차가 점점 좁아지더니 결국 추월하는 장면까지 지켜볼 수 있었다. 가슴이 뭉클했다. 일종의 국가주의·민족주의적 정서였던 것 같다. 물론 당시에도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아마존 등 요즘 말로 플랫폼 기업들이 있긴 했지만, 영역도 좀 달랐고 힘도 절대적이진 않았다. 적어도 전자·ICT 기기 분야에선 CES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기업이 최고라고 해도 무방했고 삼성전자 등은 이러한 칭송을 받는 데 결코 부족함 없는 기업들이었다.
똑같은 전자·ICT 분야 전시회를 표방하고 있지만 최근 CES의 참여 기업 구색은 과거와는 크게 달라졌다. 전자·ICT 분야 중심도 기기 위주에서 서비스로 점차 옮겨지고 있는데 CES 행사장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 기업의 위상도 당연히 높아졌다. 자율주행 시스템이 자동차업계의 화두로 떠오르면서 자동차 회사들도 이 행사에 대거 참여하고 있다. 전통적인 자동차 제조보다는 자율주행 시스템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는 자동차업계의 흐름을 반영한 것이다. CES가 예나 지금이나 세계 최대의 전자·ICT 분야 전시회인 것은 맞지만 산업 구조의 변화로 이른바 전자·ICT 분야 ‘실세’ 플랫폼 기업들은 참석하지 않거나 살짝 발만 담그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글로벌 시가총액 톱 10에 들어 있는 MS, 애플, 아마존, 알파벳(구글), 페이스북, 텐센트, 알리바바 등 전자·ICT 기업 7곳을 보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정작 ‘범털’들은 CES 밖에 있다는 의미다.
물론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여전히 이번 CES 행사에서 가장 많은 주목을 받는 기업들 가운데 속해 있겠지만, 조명의 강도는 과거 같지 못할 것 같다. 4차 산업혁명 혹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이름답게 세계는 팽팽 돌아가고 있는데 우리나라만 십수 년째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호들갑만 떨었지 제대로 한 게 없다. 왜 그럴까. 기업들에도 책임이 없을 수 없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정치권에 있다고 본다. 우리 산업 정책의 밑그림을 그리고 이를 실행해 나가는 곳이기 때문이다. 기업 혁신 환경 조성의 가장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조치는 규제 완화일 수밖에 없는데 이를 위해 정치권, 특히 여당이 주도적으로 한 것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아니 십수 년간 반(反)기업적 분위기를 조장하면서 기업들 옥죄는 데에만 몰두했다. 하지만 좀 더 근원적으로 이는 기업 육성에 소홀했던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나라는 그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라는 말이 있듯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권에서 내놓는 각종 정책은 국민 요구에 대한 반응으로 보는 게 타당하기 때문이다. 남 탓할 것 없다.
주요뉴스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