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 줄이고 보상은 늘려야
일단 일 시작하면 동기 부여
‘시작이 반’ 틀린 격언 아냐


새해 시작에 잘 어울리는 격언으로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이 말은 정확한 인용이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치학’에서 언급한 원문에는 ‘좋은 시작이면 절반은 된 셈이다(Well begun is half done)’라고 나와 있다. 여기에서 방점은 ‘시작’이 아니라 ‘좋은’이다. 무조건 시작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제대로 된 시작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좋은 시작을 위한 나의 새해 결심은 ‘미루기’ 버릇을 고치는 것이다. 영어로는 ‘Procrastination’이라고 하고, 쉬운 말로는 ‘깔고 앉는 것’이다. 지금 이 글도 미리 써놓지 않고 게으름 피우다가 마감 독촉을 받고서야 겨우 완성했다. 심리학적으로 정의하자면, 나중에 피해가 올 것을 알고도 현재의 중요한 일처리를 의도적으로 미루는 행동을 말한다. 일을 미루는 버릇은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병적으로 심각한 사람이 미국인의 20% 정도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경영학자들은 이 미루기의 문제를 단순한 시간 관리 실패로 치부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닥쳐서 일을 하면 오히려 효율이 높아진다고 오해하기도 한다. 그런데 실제로 일을 미루는 것은 매우 복잡한 심리적 현상이며, 개인이나 사회적으로 큰 비용이 들어가는 문제이다. 미루기에 대한 과학적 연구 중 유명한 것으로 1997년 미국에서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결과가 있다. 학기 초반에는 일을 미루는 학생들이 더 행복하고 심리적으로 편안했지만, 학기가 끝나갈 무렵에는 이들의 평균 학점이 낮아졌을 뿐 아니라, 스트레스나 질병 지수도 높아졌다. 결국 일을 미루는 사람들은 업무만 늦게 마치는 게 아니라 삶의 질도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런 과학적 연구가 없더라도 우리 모두는 경험을 통해서 잘 알고 있다. 일을 미루면 결국 나중에 내가 더 큰 피해를 본다는 것을. 그런데도 왜 오늘도 우리는 미루며 살고 있는 것일까?

생물학적으로 보면 이렇게 일을 않고 깔고 앉아있는 것은 내 잘못이 아니라 내 뇌의 잘못이다. 우리 뇌에는 ‘대뇌변연계’라는 부분이 있다. 인간뿐 아니라 많은 동물이 가지고 있는 부위다. 뇌의 이 부분은 우리의 감정과 본능을 관장한다. 식욕, 성욕, 수면욕 같은 원초적인 욕구뿐 아니라 슬픔, 기쁨, 즐거움에 관한 마음이 만들어진다. 이에 비해 인간에게만 발달한 ‘전두엽’이라는 부분이 있다. 우리 머리 앞부분에 위치한 이 부위는 우리에게 이성적인 판단을 하게 만든다. 우리가 이성적으로는 ‘당장 시험공부 해야 하는데’라고 생각하는 것은 전두엽의 명령이고, ‘그래도 게임 한판만 더하고 싶다’는 욕구는 대뇌변연계의 작동이다. 이 둘의 충돌에서 우리의 미루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뇌의 이런 작용을 안다면 과연 우리가 일을 질질 끄는 게으름을 고칠 수 있을까? 뇌에서 전두엽이 패배하는 상황은, 보통 해야 할 업무가 과다하거나 너무 어려운 일일 때 벌어진다. 따라서 목표로 하는 일을 크기도 작고 쉽게 다룰 수 있을 정도로 만드는 것이 미루기를 이겨내는 한 가지 방법이다. 두 번째로 이해해야 할 것은 우리가 대뇌변연계의 자극에 집착하는 것은 사실 화학물질의 중독 현상과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 맛있는 것을 먹고, 늘어지게 자고, 운동이나 게임을 하면서 얻는 즐거운 경험들은 대부분 뇌에서 도파민을 분비하게 해 행복감을 느끼게 만든다. 따라서 어떤 업무를 제 시간에 마쳤을 때에도 이런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보상이 있어야 미루기를 이겨낼 수 있다. 이 보상은 물리적인 것일 수도 있지만 칭찬, 성취감 같은 감정적인 것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일에 대한 동기를 부여하는 방법도 중요하다. 많은 사람은 동기부여가 안 돼 일을 시작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런데 심리학 실험 결과들을 보면 일단 일을 시작하고 보면 동기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 깔고 앉음을 이겨내는 방법 중 하나는 일단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말의 ‘시작이 반이다’가 결국 틀린 격언은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리 생각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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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미생물학과 학사·환경대학원 석사, 영국 웨일스대 박사, 미국 위스콘신대 연구원, 이화여대 교수를 거쳐 현재 연세대 공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로 재직 중. 연구 분야는 미생물 생태학과 기후변화의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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