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년 전망 - ② 한국경제
기업의 경쟁 독려하고 혁신 지원하는 ‘인센티브’ 만들어내지 못하면 국제무대서 뒤처질 뿐
새 사업 자유롭게 시작할 수 있는 ‘네거티브 시스템’ 절실…現 기조 유지 땐 잠재성장률 더 떨어져
◇포용적 제도 없는 한국경제
경제학은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시장의 잠재력을 활용해 기술혁신을 장려하고 인재 육성에 투자하고 개인이 재능과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경제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런데 국가들은 이 간단한 목표를 왜 이루지 못하는가. 나라별로 경제적 성패가 다른 것은 각국의 제도에서 사람과 기업에 부여하는 인센티브가 다르기 때문이다. 인센티브를 만드는 건 정치다. 우리 경제성장이 목표대로 되지 않는 것은 정부와 정치가 경제 활동을 돕는 인센티브를 만들어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런 애쓰모글루 미 MIT대 교수와 제임스 로빈슨 하버드대 교수는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라는 저서에서 역사적으로 두 가지 형태의 정치·경제적 제도가 존재해 왔다고 본다. ‘포용적 제도’와 ‘착취적 제도’다. 세계 역사 속에서 성공한 나라는 포용적 제도를 지녔으며, 실패한 나라는 착취적 제도를 지녔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포용적 제도의 성격을 지녔던 공화정 시대 로마는 강한 나라를 건설했으나 착취적 제도로 전환된 제정 로마는 패망의 길을 걸었다. 군주와 귀족의 권한을 제한하면서 의회의 전통을 이뤄낸 영국이 왕실 권력에 의해 민생이 크게 좌우됐던 프랑스에 비해 산업혁명과 민주주의를 앞서 이뤄냈다. 이런 것들이 포용적 제도가 성공한 나라를 이끈 역사적 사례다.
두 학자는 정부가 법치주의를 실행할 수 있을 만큼 힘을 지녀야 하며 다양한 가치를 수용할 수 있는 다원적 정치제도를 가져야 포용적 제도를 이룰 수 있다고 강조한다. 성장을 위한 경제활동에서 동반되는 창조적 파괴는 사회의 분쟁과 갈등을 유발하게 마련인데, 정부가 다원적 가치를 존중하고 법치주의를 통해 이를 조화시켜야 경제 성장을 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바뀌지 않으면 더 나빠진다
한국경제의 발전은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도입된 포용적 제도 에 힘입은 바 크다. 이승만 정부는 자유시장제도를 도입하고 대중교육으로 양질의 노동력 공급을 가능케 했고, 박정희 정부는 경제발전 계획을 통해 국민과 기업의 경제에 대한 의지를 유도했다. 이어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부는 민주화와 정권교체를 통해 다원적 가치를 존중하고 법치주의를 발전시켜왔다. 수출주도의 한국 경제는 포용적 국제무역질서의 도움도 크게 받았다.
그런데 오늘의 한국경제는 어떤가. 인구의 감소와 더딘 기술혁신으로 잠재성장률이 하락하고, 중산층이 위축되고 불평등이 심화하고 있다. 정치·경제적 제도는 정치·경제적 환경 변화에 따라 새롭게 포용적으로 변모해야 한다. 지금 정부의 경제 정책과 국정 운영 기조가 계속된다면 저성장, 중산층 위축, 불평등 심화는 올해도 계속될 뿐 아니라, 미래의 잠재성장률은 더욱 내려갈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한국이 당면한 문제점과 과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고령화와 생산가능인구의 급감. 이를 극복하기 위해 1인당 생산성을 증가시킬 수 있는 제도와 교육이 필요하다. 둘째, 4차 산업혁명이라는 기술 변화. 이에 대응하기 위해 기술혁신을 통해 생산성을 증가시키고 공유와 협동의 가치를 일깨워야 한다. 또 기술 변화가 초래할 일자리의 감소와 독점력을 통한 소득 분배의 악화를 통제할 지배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셋째, 전 세계적인 포퓰리즘에 따른 보호무역. 이에 맞서기 위해 우리 경제의 과도한 수출 의존도를 조정해야 한다.
이러한 미래의 정치·경제적 환경 변화에는 공통점이 있다. 갈등의 심화다. 인구구조의 변화는 생산 가능한 세대가 부양해야 할 인구를 증가시키고 이에 따른 세대 간 갈등을 증폭시킨다. 기술 변화는 생산성 격차를 초래해 승자독식의 현상을 부른다. 보호무역에 따른 갈등 격화는 세계무역량 증가율을 감소시켜 결국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 감소와 소득분배의 악화를 초래할 것이다. 한국이 이러한 갈등을 해소하거나 조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 이러한 환경 변화에 대응할 포용적 제도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 이들 질문에 대한 답은 불행히도 부정적이다. 조화와 타협의 능력도 의지도 없이 분열과 갈등을 조장한다. 법치주의보다는 인기영합주의, 다원적 가치보다는 편향적 이념과 지역주의에 매몰돼 정치·경제제도의 포용성을 떨어트린다.
예컨대 기업의 혁신 성장이라는 구체적 대안 없이 소득 분배만 강조하는 정부 정책이 계속되면 앞으로도 실업률 증가, 비정규직 확대, 소규모 자영업자 생계난은 해소되기 어렵다. 대기업 노조에만 유리한 일방적 정책이 고수되는 한 계층 내 착취는 근절되지 않을 것이다. 생산성 향상을 위한 제도적 노력이나 창조적 파괴를 외면한다면 신기술에 의한 창의적 사업 기회와 직업 선택의 자유는 점점 더 사라질 것이다.
◇악화하는 한국경제 환경
오늘날 세계 경제력의 판도는 급변하고 있다. 10여 년 전만 해도 신생기업이었던 IT 기업들이 주식시장가치 상위권을 휩쓴다. 매년 수십 개의 유니콘이 세계적 기업으로 등장한다. 유감스럽게도 한국의 유니콘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기업 성장의 발목을 잡는 시스템 문제다. ‘네거티브 시스템(negative system)’을 속히 도입해야 한다. 현 정권에 이르러 기업투자가 현저하게 감소하고 있다. 법적·행정적 불확실성에 따라 경제적 인센티브가 손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자본의 해외 이전 현상이 심화한다. 공무원들의 판단 기피증과 책임 회피가 극심해지고, 보호무역에 대응해 내수를 살릴 서비스업의 발전이 요청되지만, 온갖 규제가 발목을 잡는다. 미·중 갈등으로 우리의 선택지가 좁아지는데 일본과의 관계 개선은 난망하다.
교육 또한 무너지고 있다. 과학기술과 국제적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인재교육에 실패하고 있다. 창의성과 수월성, 자율성이 무시되며, 교육이 정치화하고 있다. 정부는 일반공립학교의 교육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자율형사립고를 폐지하면서 선택의 자유를 훼손하고 있다. 10년간 이어진 ‘반값 등록금’은 대학의 경쟁력을 떨어트리고 있다. 물가상승을 고려하면 과거에 비해 등록금의 실질적 부담은 크게 저하됐고 큰 규모의 국가장학금이 지급되는 상황이지만, 아무도 반값등록금이란 정치적 구호의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해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려 하지 않는다.
한국경제는 이대로 실패하고 말 것인가. 문재인 정부가 노무현 정부 계승자라지만 둘은 다르다. 노 대통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대한민국이 전 세계적 보호무역의 파고를 감당할 수 있었을까. 적어도 노 대통령은 국익과 국가의 미래를 보며 진보와 보수의 가치를 조화시키려 했다. 현 정부의 경제 정책과 국정 운영 기조는 바뀌어야 한다. 시대적 변화를 깨닫고 정파적 계산을 넘어 다원적 가치를 존중하며 법치주의를 공고히 하는 포용적 제도를 구축해 한국경제를 실패의 길로부터 되돌려야 한다. 경제 회생을 위한 골든 타임은 비록 짧지만, 아직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연세대 명예교수·전 한림대 총장
■ 세줄 요약
포용적 제도 없는 한국경제 : 한국의 정부와 정치는 경제 활동을 돕는 인센티브를 만들어 내지 못함. 경쟁을 독려하고 기업 혁신을 지원하는 ‘포용적 제도’ 도입 없이는 국제무대에서 한국 경제와 생활 수준이 계속 뒤처질 것.
안 바뀌면 더 나빠진다 : 현 국정 운영 기조가 계속되면 2020년에 저성장, 중산층 위축, 불평등 심화가 계속되고 미래의 잠재성장률은 더욱 내려가게 될 것임. 정부는 사회의 다원적 가치를 존중하고 법치를 통해 갈등을 조화해야 경제 성장을 기할 수 있어.
경제 회생을 위한 길 : 세계 경제력의 판도가 급변 중. ‘네거티브 시스템’ 도입으로 기업 성장의 발목을 잡는 시스템을 고치고 한국경제를 실패의 길로부터 되돌려야 함. 경제 회생을 위한 골든 타임이 아직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님.
■ 용어 설명
‘포용적 제도’란 사유재산권과 공평한 경쟁을 위한 법 체제가 확립되고 새로운 기술을 위한 투자와 기업활동이 보장되는 제도. 그 반대는 ‘착취적 제도’. 이는 경제 성장의 결과를 복지 강화나 분배적 정의와 연결하기 위해 문재인 정부가 즐겨 사용하는 ‘포용적 성장’과는 다른 개념임.
‘네거티브 시스템(negative system)’이란 특정한 법률적 규제로 금지돼 있지 않은 한 새로운 사업을 자유롭게 시작할 수 있게 하는 제도. 반대로 법률적 규정에 의해 허락된 사업만 할 수 있게 하는 제도는 포지티브 시스템(positive system)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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