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문경시 사회복지법인 신망애육원이 ‘풀벌레놀이터’를 지역민에게 개방하면서 지역 사회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8월 아동들이 암벽 오르기를 하며 놀고 있는 모습.  신망애육원 제공
경북 문경시 사회복지법인 신망애육원이 ‘풀벌레놀이터’를 지역민에게 개방하면서 지역 사회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8월 아동들이 암벽 오르기를 하며 놀고 있는 모습. 신망애육원 제공

경북 문경 신망애육원 ‘풀벌레놀이터’

함께 놀고 어울리는 공간 부족
원생들 의견 모아 놀이터 조성

지난해 3월부터는 주민에 개방
지역 어린이들에게도 인기만점

인근 유치원·학교서 찾아와
보육원에 대한 인식까지 개선


“함께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면서 보육원, 그리고 보육원생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습니다.”

경북 문경시 소재 사회복지법인 신망애육원은 시설 내 ‘풀벌레놀이터’를 지역민에게 개방하면서 이처럼 지역 사회로부터 호응을 얻고 있다. 이곳은 애초 소속 고아들을 위한 놀이 공간이었다. 그러나 애육원은 지난해 3월 운영방침을 바꿨고, 이제는 인근 지역 거주 청소년이라면 누구든 풀벌레놀이터에서 뛰어놀 수 있게 됐다. 공간 개방은 지역 아동들의 ‘놀 권리’ 신장을 위해 시행됐다. 그런데 어느덧 취지를 넘어선 따뜻한 가치가 샘솟고 있다.

아들과 함께 이곳을 찾았던 여명옥(43) 씨는 8일 “부모 없이 자란 아이들이 생활하는 보육원은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기피시설로 분류된 폐쇄적 공간으로만 여겨졌었다”며 “풀벌레놀이터에서 함께 웃고 뒹구는 모습을 보면서 편견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애육원은 1954년 5월 5일 12명의 고아를 데리고 개원했다. 이후 무수한 아이가 이곳을 거쳐 갔다. 타의에 의해 떠맡겨진 모진 운명. 선생님 1명과 7∼8명의 아동이 같은 공간에서 한 조로 묶여 생활했다. 이들에게 서로는 가족이다. 집이자 배움터인 좁은 공간에서 아이들은 뛰어놀 나이에 사회를 먼저 배웠다고 한다.

이수정(가명·11) 양도 동생 손을 잡고 3년 전 애육원에 입소했다. 부모는 다툼이 잦았고, 모친이 집을 나가자 이 양이 엄마 역할을 도맡았다고 한다. 그때 이 양은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 이 양은 “애육원에 온 첫날 다들 너무 반갑게 맞아 줘서 너무 좋았다”면서도 “남녀가 분리돼 지내기 때문에 동생과 같은 방에서 못 지내는 부분이 조금은 섭섭했었다”고 회상했다.


같은 장소, 떨어진 공간. 이처럼 애육원엔 함께 놀고, 때론 혼자 쉴 수 있는 장소가 부족했다. 정부 지원은 여전히 의식주, 교육에만 집중됐다. 도심 외곽에 자리 잡은 애육원의 지리적 단점도 한몫했다. 아이들은 방과 후와 주말 여가에 적합한 놀이문화를 찾기 어려웠다. 단체 생활 탓에 고학년이 돼도 자신만의 휴식 공간을 확보할 수 없었다. 놀 공간이 절실하던 터, 2018년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진행한 ‘아동 놀 권리 보장을 위한 놀이·문화 환경개선’ 공모사업에 애육원이 선정되면서 아이들의 간절한 바람이 이뤄지게 됐다.

풀벌레놀이터는 애육원 소속 아동들에 의해 탄생했다. 그해 7월부터 아이들은 자신들만의 놀이 공간 조성을 위해 머리를 맞댔다. 또래와 달리 표현이 부족했던 아이들은 디자인 회의, 놀이터 안전수칙 제정, 공간개선 및 조성 과정 등을 거치면서 처음으로 자기 생각을 또렷이 말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놀이터는 아이들의 정서·신체 발달을 동시에 꾀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실내에는 암벽 오르기 등 대근육 발달을 도울 수 있는 구조물이 들어섰고, 외부는 심리적 안정을 주는 ‘숲’ 공간으로 꾸렸다. 그리고 이후 여섯 달의 치열한 논의 끝에 풀벌레놀이터가 개장, 열매를 맺었다. 현판식 사회를 맡았던 이 양은 “놀이터 회의로 모일 때마다 너무 즐거웠다”면서 “언니, 오빠, 동생들이 다 모일 수 있는 시간이라서 더 행복했다”고 귀띔했다.

아동 맞춤형 공간인 풀벌레놀이터는 특히 인근 유치원의 단골 견학 장소로도 손꼽히고 있다. 유치원 교사들은 “대세인 숲 놀이 공간에 안전한 놀이터가 있으니 너무 좋았다”거나 “물놀이, 모래 놀이 등 아이들이 좋아하는 요소가 복합적으로 들어서 아이들이 또 찾고 싶다고 아우성”이라는 반응을 입 모아 쏟아내고 있다. 아이들은 풀벌레놀이터에 여전히 애착이 깊다.

공간이 개방된 지금은 고학년 위주로 놀이터 ‘보안관’을 자청, 지역 주민에게 놀이터를 안내하고 매주 관리 회의도 시행하고 있다.

애육원 맏형이자 놀이터 지킴이 회장을 맡은 황동현(18) 군은 “우리가 만든 장소에 어린 동생들이 매주 놀러 와 웃는 모습을 보니 뿌듯하고 신이 난다”며 “‘풀벌레놀이터는 우리가 지킨다’는 애육원 친구들의 사명감이 날을 거듭할수록 커지고 있다”고 자랑했다.

김성훈 기자 tarant@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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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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