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법무 검찰 인사권 행사 주목
권력비리 수사팀 강제 교체는
검찰에 대한 ‘反민주적 통제’
靑 선거개입 감찰 무마 충격적
한국 민주주의 붕괴 위기 직면
진실 밝히고 국민 판단 구해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기로에 섰다. 한 길은 청와대 선거개입·감찰무마 사건을 파헤치는 검찰 수사팀을 무력화하는 쪽이고, 다른 길은 건드리지 않음으로써 계속 수사하게 하는 쪽이다. 그 선택에 따라 자신에 대한 평가가 극단적으로 달라지고, 법치주의도 크게 영향을 받는다. 머지않아 법적 책임과 정치적 공과를 따질 때도 올 것이다.
청와대의 길은 명확하다. 인사로 대검찰청의 한동훈 반부패강력부장, 박찬호 공공수사부장, 이원석 기획조정부장 등 ‘윤석열 검찰총장 라인’의 손발을 자르는 것이다. 이는 대검 검사장의 경우 필수 보직 기간을 1년으로 규정한 대통령령 제12조 검찰인사규정 위반이다. 무엇보다 권력의 부당한 압력을 막기 위한 ‘검찰 수사권 독립’ 원칙의 전면적 훼손이다. 판사 출신인 추 장관의 선배 법관들이 금과옥조로 여겼을 법치주의에 대한 배신이기도 하다. 따라서 정치판 물을 먹었다고는 해도 추 장관이 민주적 형사사법체계 원리의 팔목을 대놓고 비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상식대로 굴러가지 않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최근 비정상적인 상황이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곳곳에서 무너지고 있다. 붕괴의 진원지는 청와대와 국회고, 파괴자는 운동권 출신 여당 정치인들이다. 1970·1980년대 군부독재 타도를 외쳤던 민주화 투사들, 직선제 개헌 거리시위를 주도했던 학생운동권 인사들, 그리고 자유와 인권수호에 나섰던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민주주의 도살자로 바뀌고 있다는 사실은 역설적이고 자해적이다. 경제 번영을 위해 묵묵히 일한 산업화 세대는 그들에 의해 타도 대상인 기득권 세력이 됐고, 부패한 정치권력 속에서 그나마 질서유지 역할을 했던 검찰은 단두대로 향하고 있는 처지다. 50여 년 전 공산당 홍위병이 판쳤던 중국 문화대혁명 시대와 다를 바 없다. 역사가 거꾸로 흘러가는, 2020년 한반도의 대한민국 현실이다.
뉴욕대 정치학과 교수인 버나드 마넹은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대의제 원칙 네 가지를 제시했다. 첫째, 일정한 시간적 간격을 두고 선거를 통해 대표를 뽑는다. 둘째, 통치자의 정책 결정은 유권자 요구로부터 독립성을 가진다. 셋째, 피통치자들은 통제에 종속되지 않고 정치적 요구를 표현할 수 있다. 넷째, 공공결정은 반드시 토론을 거친다. 지난 연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수정안이 공개되고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때까지 걸린 기간은 불과 7일이다. ‘범죄 혐의 통보 의무’ 등 독소조항이 가득했지만, 의미 있는 토론 없이 일사천리로 통과됐다. 이런 과정만으로도 대의제 민주주의의 죽음이다.
청와대의 2018년 6·13 지방선거 울산시장선거 개입 의혹 사건은 선거민주주의 파탄이라는 측면에서 충격적이다. 드러난 사실만 봐도 얼개는 명확하다. 송철호 캠프 인사들은 청와대에 김기현 울산시장에 대한 비리첩보를 제공했고, 청와대는 경찰로 비리첩보를 이첩해 하명 수사를 벌였으며, 결국 김기현 시장은 낙선하고 문 대통령의 오랜 친구인 송철호 후보가 당선됐다. 조연도 많다. 송병기 울산시청 경제부시장, 황운하 대전지방경찰청장, 임동호 더불어민주당 전 최고위원,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 장환석 균형발전비서관실 전 선임행정관, 조국 전 민정수석…. 유권자들은 결국 우매한 군중이 되고 말았다. 그런 사회는 민주주의 체제가 아니다. 교묘하게 조작된 거짓 민주주의의 사회다. 국민 입장에서는 실체적 진실 규명을 위해 검찰 수사가 꼭 필요하고, 권력 입장에서는 수사를 막아야 한다.
문 대통령은 14일 예정된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송철호 후보 당선을 위해 선거공작을 지시한 사실이 있습니까. 아니면 그 같은 행위에 대해 보고를 받은 적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자세히 정직하게 답변해야 한다. 결백하다면 검찰 수사를 방해할 아무런 이유가 없을 것이다. 오히려 격려하는 게 정상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국민에게 사죄하고 판단을 요청해야 한다. 인사 카드로 검찰 수사를 잘라버리는 방식은 국민 저항을 불러올 것이다. 1986년 추 장관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불온 서적으로 규정한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했다. “국민을 바보로 알고 있거나, 바보로 만들고 싶지 않다면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을 벌일 수 있을까”라는 자신의 결정문을 다시 읽어보길 바란다. 그때도, 지금도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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