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7일 신년사에서 북한 핵무기 제거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은 채 남북 철도·도로 연결과 금강산 관광 재개, 접경지역 협력 등을 나열한 것은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말이 남북협력 사업일 뿐, 사실상 대북 지원에 나서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북·미 대화를 앞세웠던 것이 사실”이라면서 “그러나 교착 속에서 남북 관계의 후퇴까지 염려되는 지금 남북 협력을 증진시킬 현실적인 방안을 모색할 필요성이 절실해졌다”고 했다. 이는 미·북 사이의 북핵 협상에 진전이 없더라도 이젠 남북 차원의 독자 사업에 나설 의사를 천명한 것이다.

북핵 폐기에 전념하는 미국이 우려하고 나선 것은 당연하다. 해리 해리스 미국 대사는 신년사 발표 이후 진행된 KBS 인터뷰에서 “그런 조치들은 미국과의 협의하에 이뤄져야 한다” “동맹으로서 긴밀하게 함께 일해야 한다” “남북관계 진전은 비핵화와 속도를 맞춰야 한다”고 밝혔다. 이례적일 정도로 직설적인 해리스 대사 우려가 아니더라도, 만약 문 대통령이 신년사를 실행에 옮기면, 대북 제재엔 큰 구멍이 뚫리고, 중국·러시아는 제재 완화 결의까지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제재는 무력화하게 된다. 김정은 체제가 흔들릴 정도의 제재가 없으면, 북한이 핵무기를 없애야 할 이유도 없어진다. 이란 핵 문제로 전쟁 상태에 돌입한 미국으로서는 이런 한국을 동맹국으로 생각할지조차 의문이다.

그런데 문 정권 내부에서는 후폭풍을 감내하더라도 ‘미국 의존’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어가고 있다. 문정인 통일외교안보특보는 6일 미국 워싱턴에서 중국·러시아의 대북 제재 완화 결의안이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심지어 “(북핵 협상에) 진전이 없고 국내 정치적으로 어려워지면 문 대통령이 어떻게 계속 (미국과) 같이 갈 수 있겠느냐, 수정할 수도 있다”고 했다.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 일각에서는 반미(反美)라도 불사해야 할 시점이며, 4월 총선에 불리하지 않을 것이란 주장도 나온다. 문 대통령이 거론한 김정은 답방이 총선 직전에 이뤄지거나, 답방 날짜라도 잡히면 총선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친북 정책이 선거와 맞물리면서 안보가 더 위험한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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