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증후군’은 K-팝과 K-드라마에 빠져 한국인이 되고 싶어 했던 한 일본 여성이 한국에서 5년간 체류하며 마침내 ‘혐한’에 이르게 된 이유를 기록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서울증후군’은 K-팝과 K-드라마에 빠져 한국인이 되고 싶어 했던 한 일본 여성이 한국에서 5년간 체류하며 마침내 ‘혐한’에 이르게 된 이유를 기록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서울증후군 / 기쿠가와 에리카 지음 / 라이시움

한류에 빠져 한국서 5년 체류
생활속 문화충격 생생히 보고

계속 울리는 카톡… 뒷담화…
과격한 표현 넘쳐나는 드라마
반박하기 힘든 불편한 진실도


‘파리증후군’은 다른 문화권을 만날 때 발생하는 적응장애나 문화충격을 가리키는 정신의학 용어다. 일본인들이 ‘꽃의 도시’나 ‘우아하고 예술적인 사람들’이라는 파리에 대한 환상이 막상 지저분한 도심과 친절보다는 자신을 명확하게 표현하는 파리지앵들을 만나 깨지면서 생겨나는 우울, 심지어 망상 등 정신장애에서 이 용어가 나왔다. 현지 일본대사관에서 이런 환자에 대한 대응 매뉴얼을 마련해놓을 정도다. 타인에게 폐 끼치는 행동을 극도로 피하며 예의와 친절, 청결이 몸에 밴 일본인들만의 ‘증상’으로 볼 수도 있다.

와세다대 출신의 1980년대생 일본인 여성 기쿠가와 에리카(菊川惠梨香)가 쓴 이 책은 ‘서울증후군’이란 제목이 이미 그 내용을 시사한다. 인천공항에 도착하는 순간, 감격에 겨워 눈물을 쏟을 정도로 K-팝과 K-드라마, 잘생긴 한국 남성들에게 푹 빠졌던 저자는 공항택시의 바가지요금부터 환상이 깨져가기 시작한다. 그는 5년간 한국에 체류하며 만난 각계각층의 한국인들과 직장·일상의 문화를 세심히 관찰하고 꼼꼼히 기록했다. 그러면서 점차 ‘친한-지한-반한-혐한’으로 옮겨가 결국 서울증후군에 걸리게 된 자신을 비롯한 적지 않은 주변 일본인의 문화적 충격을 작정하고 털어놓는다.

한·일 관계가 험악한 시기에 나온 책이라 삐딱하게 볼 독자도 있을 수 있지만, 저자는 양국의 역사나 정치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 파리증후군을 접한 프랑스인들이 가졌을 법한, 그저 일본인들의 독특한 문화와 정서에 기인한 ‘증상’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파리증후군의 ‘서울판’으로 보는 경우다. 하지만 이방인의 시선은 우리의 거울이다. 저자가 본 것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인 ‘헬조선’의 부분이다. 우리 자신도 그러려니 할 뿐 저자가 겪은 스트레스에서 자유롭지 않다. 역으로, 이 책은 ‘평범한’ 일본인들의 속내를 들여다보는 창으로, 우리가 지켜야 할 게 무언지 생각하게 한다.

가장 큰 괴리는 ‘관계’의 차이에서 나오는 것 같다. 일본인은 서로 거리를 두고 교제하는 것이 대인 관계의 철칙이지만, 한국인은 가까우면 불쾌와 피로를 넘어 전율까지 느끼게 한다.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 보자. 엘리베이터에서 몇 번 눈인사를 나눈 것이 전부였음에도 어느 날 헝클어진 차림으로 느닷없이 찾아온 이웃집 여자. 이름과 나이를 묻고는 소파에 누워 ‘언니라 부르면 되겠네’라고 은혜를 베풀 듯 한 뒤 수시로 들락거리며 침대에 눕고 냉장고를 열고 화장실에서 대변까지 본다.

한국인은 사생활의 관음증 환자이자 노출증 환자다. 수시로 울려대는 ‘카톡카톡’의 메아리, 진절머리가 나는 메일과 전화공격, ‘뭐해?’ ‘밥 먹었어?’‘아무래도 애인이 정신적으로…’ ‘아무래도 엄마가 치매에…’, 결국 등골을 오싹하게 하는 마지막 인사는 ‘또 연락할게’다. 대나무 숲, 블라인드, 단톡방, 익명 사내 게시판, 인터넷 헛소문 문화는 한국 특유의 현상일지 모른다.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세요’로 시작하는 얘기들은 어느 사이엔가 모두 알고 있다. 개개인의 취미나 인생의 낙이 없어서인지 비밀이야기와 소문에 유별나게 탐닉한다.

타인에 대한 배려 예절은 거의 없다. 일본에서는 엘리베이터 안에 타고 있는 사람이 단추를 누르지만, 한국에서는 밖에 있는 사람이 단추를 누르고 있다. 심지어 화장실에 간 일행을 기다리기도 한다. 한국 드라마에서는 1분에 한 번꼴로 고함치며, 3분에 한 번꼴로 분노하고, 10분에 한 번꼴로 싸우며, 30분에 한 번꼴로 정신을 잃는다. 한국인들이 꼽는 연기 잘하는 배우는 하나같이 이성을 잃고 분노하는 패닉을 실감 나게 표현한다. 그런데 한국인의 일상도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죽겠어요’ ‘미치겠어요’ ‘돌겠어요’ 등 일상에서 한국인은 스스로 다스릴 수 없는 감정으로 인한 과격한 표현방법으로 일본인을 공포에 떨게 한다.

지인과의 약속도 2주 전에 잡는 것이 일본에서는 보통이지만, 한국에서는 ‘벙개’가 일상이다. 여자가 지갑 꺼내는 척만 해도 화들짝 놀라며 만류하는 한국 남자이기 때문에, 한국 남자 만나는 여자는 동전 한 닢 없이 빈손으로 나가도 창피당할 일이 없다. 연인도 더치페이가 상식인 일본 여자로서는 마음이 천근만근이다. 한국 여자들은 뼈까지 발라먹고 골수까지 쪽쪽 빨아먹을 기세로 남자에게 물질적인 것을 바란다.

한국에선 주먹구구식으로 얼렁뚱땅하지 않으면 굶어 죽기 십상이다. 일본은 밀리미터, 한국은 센티미터, 일본의 10년은 한국의 1년. 후진국형 부조리와 부도덕, 뒤에서 벌어지는 나쁜 짓, 일본인이 한국인과 함께 일한다는 건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를 동반한다. 한국에서 협력사원으로 일하던 일본인의 자살은 동병상련이다.

인색하고 탐욕스러운 한국인은 소득계산에 예민해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손해가 간다 싶으면 눈알이 뒤집히고 입에 거품을 문다. 이에 비해 ‘다음 세대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 증세하자’는 데 동의하는 일본 노인은 얼마나 어른스러운가…등등.

에둘러 말하는 일본인의 습관을 벗어던지고 저자는 한국인처럼 ‘까놓고’ 말한다. 문화적 차이를 들어 반박할 수도 있고, 수긍하기 어려운 점도 있다. 그렇다 해도 ‘서울증후군’의 지적은 우리의 민낯을 드러낸다. 320쪽, 1만3800원.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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