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와 검열을 연구해온 저자가 문화일보 ‘에로틱 시네마’ 코너에 연재했던 칼럼 등을 보완해 엮었다.
‘191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영화로 보는 성의 현대사’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영화사에서 에로티시즘이 어떻게 재현됐는지를 시대별로 분석했다. 이른바 ‘야한 영화’는 당대를 지배한 담론과의 충돌 혹은 대항으로 잉태된 문화적 산물이라는 시각으로 가부장 중심의 문명이 영화에서 어떻게 이용됐는지를 풀어냈다.
초기 무성영화와 1950년대 이전의 고전 영화는 성적 금기를 시각적으로 암시하며 에로티시즘을 통해 비주류의 재현을 조명함으로써 사회적 전복을 꾀했다. 영화의 황금기인 1960년대 한국과 미국의 중추적인 감독들은 성(性)이 사회문화적 언어로 자리잡게 했다. 격변의 혁명기를 거친 후 나온 영화는 억압과 해방이 성을 통해 대조되는 양상을 보여준다. 1980년대에는 성이 대중문화 안에서 본격적으로 소비되는 경향을 띠었으며 1990년대로 들어서서는 에로티시즘을 다각적 시각에서 조명한 영화가 나왔다.
또 2000년대 이후에는 섹스가 혁명의 기제로 사용된 영화가 만들어졌다. 저자는 ‘섹스는 곧 혁명’이라는 마지막 장의 슬로건이 이 책을 쓴 이유라고 설명하며 인류의 혁명적 섹스를, 섹스를 통한 혁명의 행보를 비춘 영화를 포착한다. 저자는 또 “영화에서 여성의 (벗은) 몸은 정상적인 인간적 관계에서의 자리가 아닌 카메라 앞 (남성) 감독의 시선과 배후에 수많은 남성적 시선을 만족시키기 위해 도식화됐다”고 강조한다.
성 현대사의 흐름과 맞닿아 있는 영화적 경향을 설명한 이 책에는 흥미로운 내용도 담겨 있다. 체코 출신 구스타브 마차티 감독의 ‘엑스터시’는 극영화 최초로 여성의 누드와 에로티시즘을 재현한 작품이다. 바티칸 신문은 노출 수위가 높은 이 영화에 대해 “교황이 영화를 금지하도록 권장했다”는 기사를 실었다. 미국에서 피임을 불법화했던 1910년대에 피임 지지운동을 벌이다가 처벌받은 간호사 출신 마거릿 생어의 투쟁을 기반으로 여성 감독 로이스 웨버가 1916년에 영화 ‘내 아이들은 어디 있는가?’를 만들었다. 이 영화가 나온 후 피임과 여성의 권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으며 44년이 지난 뒤 미국식품의약국(FDA)이 최초로 피임약을 승인했다. 파격적인 앵글로 그로테스크한 세계를 구축한 김기영 감독의 1979년 작 ‘수녀’는 유신정권하에서 우수영화로 선정돼 지원을 받았다.
김 감독은 “흥행도 되고 우수영화도 통과하지 않겠냐는 계산”으로 대나무숲에서 벌어지는 정사 장면을 넣었고, 이 대나무가 마을 공동작업을 통해 죽부인으로 만들어져 남미로 수출되는 내용도 담았다.
저자는 서문에 “독자들이 영화에 씌워진 ‘야한 영화’라는 낙인 너머의 의미 있는 ‘신음’을 들어줬으면 한다”고 썼다. 248쪽, 2만2000원.
김구철 기자 kcki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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