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떠나보낸 뒤, 상실감과 슬픔이 어떻게 시간 속에 치유되는지를 담담하게 보여주는 그림책이다.
에번은 멍멍이와 뭐든지 함께했다. 함께 놀았고, 함께 음악을 들었고, 함께 모험에 나섰고, 봄에서 겨울까지, 그리고 하루 온종일 함께했다. 이 둘이 가장 좋아했던 일은 에번의 정원을 가꾸는 일이었다.
에번의 정원에서 모든 것이 푸르고 빛나게 자랐다. 하지만 어느 날 누구도 몰랐고, 에번은 상상조차 못 했던 일이 벌어진다. 멍멍이가 세상을 떠났다. 모든 것을 함께했던 존재가 사라지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에번은 집에 틀어박혔고, 친구와 함께 가꾸던 정원은 낯설어졌다. 에번은 분노인지 슬픔인지, 닥치는 대로 자르고 베고, 내던졌고, 정원은 순식간에 잡초로 뒤덮인다. 그러던 어느 날 호박 덩굴 하나가 울타리 밑으로 기어들었다. 에번은 덩굴을 자르려다 말고 꺼끌꺼끌하고 보송보송한 솜털 잎, 가늘고 길고 꼬불꼬불한 덩굴손을 가만히 내려다보며, 호박 덩굴을 그냥 내버려 둔다. 그리고 그 호박은 무럭무럭 자라, 에번의 삶을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고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는 새로운 희망을 맞는다.
간결한 텍스트, 여백을 살린 일러스트는 사건을, 사태의 정황을, 에번의 마음을 시시콜콜 전하는 대신 아주 조심스럽고 조용하게 독자들의 마음에 슬픔이, 상실감이, 그리고 위로가 자리 잡게 한다. 호박이 자라는 것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이야기하고, 그 시간 속에 서서히 회복돼 가는 마음을 담아낸다. 주인공이 세상으로 나아가면서 슬픔을 넘어섰다거나, 새로운 친구를 만나 완벽하게 극복했다고 이야기하지 않고, 그 슬픔을 넘어서는 과정을 보여주는 그림책은 숱한 이별과 상실, 그리고 숱한 실패에도 불구하고 자기 삶을 이어가야 하는 우리 삶을 보여준다. 그래도 그림책이 이야기하는 것은 자기 정원 안으로 들어온 호박 덩굴을 내쳐 버리지 않는 용기이다. 그렇게 세상으로 다시 한 발 나아가고, 그렇게 다시 사랑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풍부하고 화려한 색채의 일러스트가 아이러니하게 주인공의 슬픔을 더 드라마틱하게 드러낸다. 누군가 떠난 뒤 햇볕 가득 내리쬐는 환한 정원은 얼마나 비참한가. 주인공 에번을 여우로 설정했지만 그의 표정을 인간보다 놀랍도록 더 풍부하고 깊게 표현했다. 어린이부터 어른 독자까지 모두에게 위로를 주는 책이다. 2019년 칼데콧 아너상 수상작이다. 40쪽, 1만3000원.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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