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남 베이징 특파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연말 ‘폭탄선언’을 했다. 그는 노동당 전원회의 보고에서 “미국이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끝까지 추구한다면 조선반도 비핵화는 영원히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적대시 정책이 철회될 때까지 국가 안전을 위해 필수적인 전략무기 개발을 중단 없이 계속 진행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북한은 핵시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중지, 핵시험장 폐기 등의 중대 조치를 취했는데, 미국은 사실상 아무것도 한 게 없다는 논리를 폈다. 한·미 연합 군사훈련 재개와 첨단 군사장비의 한국 내 도입, 독자 제재 등 대북 적대 정책에서 근본적 변화가 없다는 주장이다.

1990년대 초반 이후 30여 년간 북한 핵 개발의 역사를 돌아보면, 북한은 협상을 무산시킬 때마다 미국의 대북 적대 정책을 문제 삼았다. 1994년 제네바 합의, 2005년 9·19공동성명 등 획기적 비핵화 협상 결과가 무산된 뒤에는 어김없이 ‘미국이 북한에 적대적인 자세를 바꾸지 않았다’는 비난이 있었다. 실제 합의가 붕괴된 가장 큰 이유는 북한이 은밀하게 핵 개발을 지속하고, 최종 문턱에서 핵무기와 시설에 대한 사찰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는 저서 ‘불가사의한 국가’에서 “북한 핵과 관련된 반복되는 외교적 위기의 주요 원인은 미국의 대북정책보다는 북한 정권 자체에 있음을 느끼게 된다”고 했다. 이어 “북한은 협상 카드를 쌓아두기 위해 ICBM이나 핵무기를 추구하지 않는다”며 “북한은 영원히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기를 원한다”고 역설했다. 김 씨 일가 정권과 체제 안전을 위해 핵을 포기할 의사가 전혀 없다는 진단인 셈이다.

문재인 정부와 중국은 현재 미·북 협상 교착 이유를 미국의 강경책에서 찾고 있는 듯하다. 문정인 대통령통일외교안보특보는 6일 미국 싱크탱크 국익연구소가 주최한 세미나에 참석해 “미·북 협상에서 미국은 더 유연하고 현실적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중국 관변 학자인 뤼차오(呂超) 랴오닝성 사회과학원 연구원도 관영 매체 기고에서 “미국은 강경한 자세를 버리고 진정성을 갖고 평양의 제안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만난 한반도 문제 전공의 중국 학자는 “북한은 미국과 수교를 원하지만, 미국 입장에서 북한과 관계를 정상화하면 주한미군 주둔과 한·미 동맹의 근거가 약해지고, 이는 중국 견제를 위한 미·일 동맹에까지 영향을 주기 때문에 협상을 진전시키지 않고 있다”고 미국의 태도를 문제 삼았다.

미국의 대북 적대 정책 논란의 뿌리는 6·25전쟁에서 배태됐다. 북한은 자유민주 체제인 남한의 공산화를 위해 남침을 하고도 미국이 침략전쟁을 일으켰고, 지금도 북한 체제 전환을 노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올해는 6·25전쟁 발발 70주년이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런민르바오(人民日報)는 최근 ‘2020년 주목할 10대 사건’ 중 하나로 중국인민지원군의 ‘항미원조(抗美援朝)전쟁 참여 70주년’을 꼽으며 “미국 침략군이 멋대로 38선을 넘자 중국 인민지원군이 압록강을 건너 조선 인민과 함께 침략자에 대항해 싸웠다”고 보도했다. 핵 보유 정당화를 위한 ‘미국의 대북 적대 정책’ 신화 창조에 중국도 동참하고 있는 셈이다.
김충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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