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박상원이 26년째 단골인 꼬치구이집에서 거침없이 달려온 40여 년의 연기인생을 풀어내고 있다. 지난해 환갑을 맞은 그는 “어느 정도 삶의 모양새가 잡힌 세 번째 성년이 됐다”고 말했다.
배우 박상원이 26년째 단골인 꼬치구이집에서 거침없이 달려온 40여 년의 연기인생을 풀어내고 있다. 지난해 환갑을 맞은 그는 “어느 정도 삶의 모양새가 잡힌 세 번째 성년이 됐다”고 말했다.

■ 배우 박상원

스무살 때 ‘대타’로 뮤지컬 주연 했죠
‘펑크’낸 유인촌 형이 제 은인이에요

저는 ‘버킷리스트’라는 말을 가장 싫어해요
더 이상 할 수 없을 때 해내면 다행인 일이잖아요

지금까지 행운에 견인당해 끌려와서
후회가 개입할 여지가 없었죠


“이제 세 번째 성년이 됐어요. 제가 선택하고 결정한 일을 완성하는 단계죠.”

지난해 환갑(還甲)을 맞은 배우 박상원은 육십이 넘었어도 여전히 열정적으로 살아가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와의 인터뷰는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꼬치구이집에서 진행됐다. 40년 넘게 한 자리를 지켜온 이 집은 박상원의 삶과 맞닿아 있다. 그는 “아내 집 근처라 이곳에서 매일 만나 연애를 했다”며 “26년째 단골이다. 주문하면 바로 구워내오는 꼬치 맛은 변함이 없다”고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우악스럽게 쏟아지는 겨울비에 한기가 들었지만 따뜻하게 데운 정종을 나누며 거침없이 달려온 그의 연기인생 40여 년을 풀어냈다.

좁은 가게를 가득 메운 손님들은 그를 반갑게 맞아주며 함께 사진 찍기를 청했다. 나이 지긋한 부부가 다가오더니 오랜 팬이라고 밝히며 박상원이 부인과 연애할 때부터 동네에서 봐왔다고 말했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도 허물없이 대화하는 모습이 역시 ‘국민배우’다.

“‘국민배우’라는 호칭은 (안)성기 형이나 잘 어울리죠(웃음). 저는 아니에요. 저는 누구보다 건강한 환경에서 좋은 시선을 받으며 연기를 해왔어요.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요. 저와 함께해준 동료들에게 감사하고, 또 그렇게 감사할 줄 아는 저 자신에게도 감사해요. 그런 마음이 몸속 근육처럼 제 속에 자리 잡고 있어요. 본능적으로 감사하죠.”

환갑을 ‘세 번째 성년’으로 표현한 그는 앞으로 펼쳐질 삶에 대한 소박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문세가 육십을 두 번째 서른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20년씩 끊어서 표현한 거예요. 성년이 되면 인간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성숙해지고 자아가 완성되잖아요. 두 번째 성년인 마흔에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알게 되고, 세 번째 성년에 이르면 어느 정도 삶의 모양새가 잡히죠. 이제 네 번째 성년을 향해 가야죠. 그동안 받은 것을 환원하고, 사회에 기여하다 보면 네 번째 성년에 다다르겠죠. 다섯 번째 성년도 맞을 수 있을까요(웃음). 그런 시간이 주어진다면 뭔가 다른 역할이 생기겠죠. 40여 년 전에 연기자의 꿈을 키우며 설레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활주로에서 이륙해서 여러 작품을 만나며 구름 위에서 훨훨 날았어요. 네 번째 성년까지는 위에서 놀다가 다시 내려와야죠. 단역으로 시작해서 주인공으로 갔다가 다시 단역으로 돌아가는 기대를 해요. 주인공이 된 제자들을 받쳐주는 아무나 할 수 없는 단역을 연기하는 게 제 꿈이에요. 이순재 선생님처럼 네 번째 성년을 넘기고도 무대 위에서 연기할 수 있다면 그 이상 바랄 게 없죠.”

1979년 서울예전 연극과에 입학한 그는 그해에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에서 주역인 빌라도로 발탁되며 일약 스타로 떠올랐고, 군 제대 후 MBC 공채 18기 탤런트가 됐다.

“연기를 하기 전에 무용을 했어요. 제가 우리나라 최초의 남자 현대무용수죠. 국립극장, 세종문화회관 등 큰 무대에 서다가 입대 전에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에 막내로 참여했어요. 앙상블이었죠. 근데 빌라도 역의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방송과 공연 스케줄이 맞물려 공연이 펑크 나게 됐어요. 기획담당자가 ‘상원이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추천해서 오디션을 통해 공연 3일 전에 그 배역을 맡게 됐어요. 저는 빌라도뿐 아니라 예수를 비롯한 모든 역할의 노래와 동작을 다 꿰고 있었거든요. 그 자체가 즐거웠어요. 스무 살짜리가 그렇게 졸지에 주인공이 돼서 추송웅, 윤복희, 이종용 등 당대 최고의 배우들 사이에 끼어서 커튼콜을 했어요. 군대 갈 때까지 105회 공연 중 30회 넘게 주역으로 무대에 섰어요. 인촌 형이 은인이죠(웃음).”

‘인간시장’(1988)의 장총찬 역을 시작으로 ‘여명의 눈동자’의 장하림, ‘모래시계’의 강우석 검사 등 굵직한 캐릭터를 강렬하게 연기하며 대중에게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킨 그에게 “어떤 캐릭터가 가장 기억에 남냐”고 물었다.

“특정 캐릭터를 꼽을 수 없어요. 잘된 드라마뿐 아니라 실패한 작품에서도 똑같이 최선을 다했거든요. 성공한 작품은 좀 더 좋은 감독과 작가가 참여했고, 좀 더 운이 좋았을 뿐이죠. 사실 베스트셀러극장 ‘강’이라는 작품이 기억에 남아요. MBC 입사한 이듬해에 그 작품에서 첫 주연을 맡았어요. 제 연기를 본 김종학 감독과 송지나 작가가 ‘인간시장’에 저를 캐스팅했고, 그 후 다른 작품으로 이어졌어요. 대나무 줄기처럼 뻗어 나간 거죠. ‘강’이 성공의 기회를 줬고, ‘인간시장’은 스타의 길을 열어줬어요. ‘여명의 눈동자’는 ‘박상원이 연기를 열심히 하는구나’ 하는 인상을 심어줬고, ‘모래시계’는 그야말로 모든 것을 가져다준 작품이죠.”

그에게 “연기활동을 계속 이어오고 있지만 대중은 ‘모래시계’에 멈춰 있는 것 같다”는 말을 건네자 “대중이 나를 바라보는 데 포커스를 두지 않는다”고 답했다.

“대중은 철저하게 양면성이 있어요. 제 편일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죠. 제 편인 팬들에게 진 빚을 제 편이 아닌 대중을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 갚는다는 마음으로 살아가요. 해바라기처럼 작품이 오길 기다리지도 않아요. 한 작품 끝나면 돌아보지 않고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해요. 그러다가 시나리오가 제 어깨를 툭 치면 다 정리하고 다시 작품에 집중해요. 앞으로 할 일들을 빽빽하게 정리해놨어요. 저 자신을 자꾸 건강한 쪽에 놔둬야 초조해지거나 판단력이 흐려지지 않아요. 뭔가 할 거리가 있어야 자신감이 생기고요. 요즘은 기타와 영어를 배우고 있어요.”

1995년 결혼해 아들, 딸을 둔 그는 아버지의 역할에 대해 “아이들이 잘될 수 있도록 지혜롭게, 멀리서 도와줘야 한다”고 말했다. 중후한 연기를 펼쳐온 그는 2017년 딸을 위해 가족예능 프로그램 ‘둥지탈출’(tvN)에 나서기도 했다.

“가족은 절대 노출시키지 않으려고 해요. 자연인으로 편안하게 살게 해주려고요. CF도 가족과 같이 찍자고 하면 무조건 ‘노’예요. ‘둥지탈출’ 섭외가 들어와서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죠. 근데 미국 유학 중에 휴학하고 집에 와있던 딸아이가 그 프로그램에 관심을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매니저에게 다시 알아보라고 했어요. 딸과 네팔로 여행을 떠나는 거라고 해서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는 생각으로 하게 됐어요. 아들, 딸 모두 예술 관련 일을 하고 있는데 본인들 생각대로 차분하게 잘 살아가면 좋겠어요.”

지난해에는 ‘정글의 법칙’(SBS)에 최고령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이미지를 바꾸려는 시도였냐고 물었다.

“아내가 하지 말라고 하면 믿고 안 해요. 본능적으로 솔직하게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거든요. 저는 전문성보다 솔직한 걸 믿어요. 예능은 24시간 카메라에 노출돼야 하는 게 혼란스러워서 피했어요. 가족들은 저를 알면서도 모르지만, 사무실 스태프들은 알게 모르게 저를 아는 사람이에요. 스태프들이 ‘정글의 법칙’ 출연을 권했어요. 저와 잘 어울릴 것 같다고요. 제가 안 해본 게 없어요. 스포츠는 하늘에서 하는 것부터 물속에 들어가는 것까지 다 했어요. 학교 다닐 때 별명이 ‘맥가이버’였고요. ‘정글의 법칙’ 보면서 ‘저건 내가 해야 하는데’ 하며 상상도 해봤어요. 해보니 정말 저와 잘 맞더라고요. PD와 작가가 최고령 출연자인데 전혀 그렇게 안 보인다고 하며 놀라더라고요. 3박 4일 동안 가만히 안 있었어요. ‘노땅’ 소리 듣기 싫어서요(웃음).”

평생 반듯한 이미지로 살아온 그는 안 가본 길에 대한 후회가 없을까.

“있을 수 있겠지만 굳이 찾아서 생각하지 않아요. 감히 저만큼 다양한 일을 한 사람은 많지 않다고 자부해요. 뮤지컬도 누구보다 일찍 했고, 드라마, 영화, 라디오 DJ, 쇼 MC 등 다해봤어요. 전 세계 다 다녀봤고, 봉사도 꾸준히 하고 있어요. 후회는 제 인생에 별 도움이 안 될 것 같아요. 저는 ‘버킷리스트’라는 말을 가장 싫어해요. 더 이상 할 수 없을 때 해내면 다행인 일이잖아요. 하고 싶은 건 빨리 찾아서 하고, 그 경험을 재생산, 재활용해야 하니까요. 지금까지 행운에 견인당해 끌려와서 후회가 개입할 여지가 없었어요(웃음).”


“연기를 죽기 살기로 하지만 작품 끝나면 교수·사진작가로 세상과 소통”

박상원은 배우라는 직업 외에도 모교인 서울예대 교수로 재직 중이며 사진작가로도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는 “연기를 죽기 살기로 하지만 작품이 끝나고 나면 빨리 빠져나와 세상과 소통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가르치는 일은 20여 년 동안 공기를 마시듯 해왔어요. 뮤지컬과 연극, 드라마는 저를 돌려주는 동력이고요. 새 작품을 만나면 세상과 단절한 채 소라껍데기 속으로 들어가듯 몰입하고, 끝나면 진짜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해요. 사진은 제가 가장 사랑하는 일이에요. 그림도 그렇고요. 어릴 때부터 화가나 조각가, 사진작가를 꿈꿨어요. 여건이 안 돼서 연기를 전공했어요. 연기를 하며 받은 스트레스를 사진이나 그림으로 푸는 게 아니라 서로 상호작용을 해요. 제 연기에는 제가 해온 모든 것이 녹아 있어요. 장인이 만들어내는 스위스 시계처럼 크고 작은 수많은 톱니바퀴가 기능적으로 돌아가는 거죠. 학생들을 가르치며 저도 많이 배워요. 학생들과도 상호작용을 하는 거죠.”

이렇듯 빡빡하게 살다 보면 쉬고 싶은 생각이 들 것 같지만 그는 “일하면서 쉬고, 자면서도 상상한다”고 자신만의 휴식 방법을 설명했다.

“저는 늘 위기를 곁에 두고 있어요. 아무것도 안 하며 쉬는 건 직무 유기라고 생각해요. 군대에서 행군할 때 걸어가면서도 잠을 자잖아요. 바다를 보고 싶어도 그냥 보는 게 아니라 카메라 파인더를 통해 봐요. 치열하게 사진을 찍지만 그 안에서 쉬는 거예요.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다 보면 일부러 쉬지 않아도 장르를 갈아타는 것 자체가 휴식이 돼요.”

그는 “그렇게 살다 보니 시간이 가장 소중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새해를 맞아 500명의 지인에게 만들어 보낸 일력에는 ‘어이쿠! 또 오늘 하루가 무섭게 성큼 다가왔네요. 오늘도! 팔만육천사백초! 깐깐하게 쓰시길!’이라고 쓰여 있다.

“요즘 시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요.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시간을 관리하죠. 삶의 핵심은 시간이에요. 일력을 매일 한 장씩 뜯기도 힘들 거예요. 한꺼번에 세 장, 다섯 장씩 뜯으며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을 느끼겠죠.”



[MENU] 26년 단골집의 은행·마늘·양송이 구이

박상원은 자신이 즐겨 먹는 안주라며 은행·마늘·양송이·가지 구이와 대합탕, 주먹밥 등을 주문했다.

그는 “꼬치 하나 굽는데 15∼20분이 걸린다”며 “성질 급한 사람은 짜증 날 수도 있지만 정성껏 음식을 준비하는 마음이 고맙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1년 365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결같이 같은 곳에서 같은 음식을 내는 이 집이 고맙다”며 “항상 줄을 서야 하지만 맞은편 커피숍에서 대기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김구철 기자 kcki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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