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대한민국 불공정 리포트>졸업장이 소득 결정하는 사회… 입시 변한다고 불공정 안바뀐다
문화일보
입력 2020-01-13 11:31
수정 2020-01-13 14:2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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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일보-공정성硏 분석 - ② 교육 공정성
교육 공정성은 입시 제도 손질로 확보되지 않는다. 부유층은 재력을 활용해 사교육이라는 무기를 차고 넘치게 활용할 수 있다. 이들은 정시·수시와 이를 바탕으로 변형된 어떠한 입시에도 사교육이란 무기로 기민하게 적응, 결국 ‘승자’가 된다. 만약, 부유층의 SKY대(서울·고려·연세대) 합격 비율을 낮추는 것을 교육 공정성 확보 방안이라 생각한다면, 이는 보기 좋게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입시제도 개편의 목적이 교육 공정성 확보가 아닌, 다가올 선거에서의 표심 확보라면 효과를 거둘지도 모르겠다.
사교육 지원 가능한 부유층 제도 관계없이 명문대 유리 정·수시 논란은 ‘정치적 의제’
고졸-대졸간 소득수준 격차 한국, 선진국들에 비해 과도 학벌만능 축소가 근본 해법
‘출발선 평등’ 사실상 불가능 사회약자·지역균형 전형 등 ‘결과의 균형’ 확대가 더 필요
최근 대두된 공정한 입시 제도를 둘러싼 논란의 본질을 먼저 살펴야 한다. 잘사는 부모를 둔 자녀가 부모의 지원을 바탕으로 좋은 대학에 가서 양질의 일자리에 취업하는 현상이 사라지지 않는 게 논란의 핵심이다. 즉, ‘계층 불평등 → 수시 전형에서의 교육 기회 불평등 → 학벌 격차 → 불평등 재생산’의 악순환으로 인해 수시보다는 정시를 선호한다는 여론이 형성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고리에서 ‘수시 전형’을 ‘정시 전형’으로 대체한다고 해서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자녀의 성취가 결정되는 현 상황이 달라지지 않는다.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왜 사람들이 학벌에 집착하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대학을 졸업하지 않으면 고임금을 보장하는 좋은 직장을 얻기가 사실상 어렵다.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2011∼2017년)를 분석해 보면, 학력별 임금 격차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전체 가구 소득을 100으로 했을 때, 중졸 집단과 고졸 집단의 소득 비는 2011년 71.7, 2017년 65.9 수준이다. 고졸 집단은 각 96.6, 92.2고, 대졸 이상 집단은 각 140.7, 137.7이다. 4년제 대학 졸업자가 고등학교 졸업자에 비해 임금지수가 더 높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를 보면, 고등학교 졸업자의 임금을 100으로 했을 때 4년제 대학 졸업자의 상대적 임금은 한국은 145인 반면, 노르웨이는 114, 핀란드는 122이다. 독일은 158로 한국보다 높지만 2∼3년제 대졸자의 임금 수준이 153으로 대졸자의 특권적 지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결국 우리나라에서 대학 졸업장이 소득의 불평등으로 연결되고, 평생에 걸쳐 계층의 분리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학력과 수입의 강한 연관성에 대해 부정하려 하지 않고, 불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그러나 고등학교에서의 학력이 대학 레벨을 결정하고 그것이 나아가 직장 그리고 평생의 수입을 결정하는 것은 결코 공정하지 않다.
박효민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학벌 프리미엄’을 줄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대학, 혹은 좋은 대학을 가려는 이유는 학벌이 결과적으로 좋은 직장을 얻는 데 매우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을 모두 경험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정치철학자인 마이클 월저 프린스턴 고등학술연구소 교수는 한 영역에서의 성취가 다른 영역으로 손쉽게 이전되면 공정성이 훼손된다고 했다. 즉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의 각 영역은 그 영역 내에서의 나름의 독립적인 공정함에 대한 기준이 있으며, 영역 간의 경계가 무너질 때 사회는 공정함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교육 영역에서의 학력 성과가 사회의 다른 영역으로 지나치게 확대 재생산되는 것을 제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대학입시에서의 승자와 패자 사이의 보상 격차를 줄이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승자독식의 사회에서 패자는 생존에 위협을 느끼게 되며, 승자 역시 언제든 자신도 낙오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고통받는다. 대학을 나왔는지 또는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가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사회에서 교육은 사활을 건 전장이 된다. 실제로 김희삼 광주과학기술원 교수 연구에 따르면, 한국의 대학생들은 고등학교를 ‘사활을 건 전장’이라 인식하는 비율이 다른 국가들에 비해 상당히 높다. 심지어 자유 시장경제의 왕국으로 인식되는 미국의 학생들에 비해서도 두 배 가까이 높은 비율을 보였다. 또 이상적으로만 존재하는 ‘동일 출발선’ 개념을 포기하고, 결과를 조정하는 방식으로 부에 따른 입시 결과 차를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해 현재 시행되고 있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전형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대학교육 기회 제공을 확대해야 소위 말하는 ‘개천에서 용이 나는’ 사회를 꿈꿀 수 있다. 일례로 영국은 지역별 명문대 진학률의 극심한 차이가 사회적 이동성을 저해한다는 인식에 따라 ‘배경 고려 전형(Contextual Admissions)’을 실시해 지역 간 불평등을 해소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동시에 현재 기계적으로 배정하는 사회적 배려 대상자, 지역균등 전형 등의 과정에서 불거지는 전형 과정상 문제는 면밀하게 보완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평등은 자유에 대척되는 개념으로 인식됐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이제 억압에서 벗어나는 ‘소극적 자유(freedom from)’를 어느 정도 달성했다. 앞으로는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이 말한 각 개인이 자아실현을 위해 무엇인가를 향해 나아가는 ‘적극적 자유(freedom to)’를 확장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실제 지난해 공정성연구회와 문화일보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자신의 삶에서 자유도가 높다고 평가하는 사람은 삶에 대한 전반적 만족도 역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보상의 차이 축소, 경쟁 압력 완화 등의 방향으로 입시과정이 개편된다면, 모든 사람이 입시 공정성에 대해 눈에 불을 켜고 민감하게 대응하는 경향도 약화할 것이다. 나아가 이후 세대에게 실질적인 삶의 선택지를 제공하는 자유의 확장이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