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언(1948~2017)

“한복을 즐겨 입으셨던 선생님의 단아한 모습이 그리운 오늘입니다.”

황해도에서 태어나 강원 원주시에서 평생을 보낸, 향토사학자로 잘 알려진 고 박찬언 선생님과의 인연은 오래됐다. 늘 바쁘게 생활하셨던 선생님은 깐깐하시기로 소문이 나서 쉽게 다가설 수 없는 분이셨다. 그렇지만 인연을 맺으면 그 깊은 애정을 항상 나눠주셨다.

지역 언론사에 근무하면서 어렵고 힘든 일이 있으면 종종 찾아뵀는데, 그때마다 격려와 위로의 말씀을 해주셨다. 오랫동안 교직에 몸담고 대학에서 학생들도 가르치셨던 선생님은 지역의 곳곳을 다니시면서 알려지지 않은 전설과 역사를 찾아내 원주의 향토사학자로 이름을 알리셨다.

2014년에는 사단법인 원주향토문화연구원을 설립해 이사장 겸 원장으로 활동하기도 하셨는데, 선생님만큼 향토사를 잘 아는 분도 드물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누구보다 원주를 아끼고 사랑하신 선생님은 평소 한복을 즐겨 입으셨는데, 단아한 모습이 잘 어울리셨다. 나이가 꽉 찬 내게 어떻게든 좋은 사람을 소개해 주시려고 의향을 물어보곤 하셨는데, 성사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선생님께서 돌아가시고 1주기 때 평소 선생님과 인연 있는 분들이 모여 조촐한 행사를 열었다. 특별하지는 않았지만, 선생님과의 추억을 조금씩 풀어놓으면서 그리움에 잠기는 시간이었다. 당시 고창영 시인은 “한없이 어린아이 같으셨고 끝없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행복해하셨고, 아파하셨고 고집스러우셨으며, 사랑하셨고, 지독하게 외로워하시던 분”이라며 선생님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했다. 이날 행사에서 내가 맡은 역할은 선생님의 글을 모아 작은 책자를 만드는 일이었는데, 책의 제목은 ‘원주에서 원주를 묻다’였다.

선생님은 원주 사람들이 원주에 살면서도 막상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을 안타까워하셨다. 풍부한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고장임에도 말이다. 그래서 향토문화연구원을 설립하셨을 것이다. 선생님의 글을 하나하나 엮으면서 그동안 몰랐던 지역의 역사를 공부할 수 있었다. 견훤산성을 비롯해 단종과 관란의 몽유, 개릉골과 신선암, 용마바위 등 재미있는 전설과 역사의 이야기들이었다.

선생님께서 좀 더 세상에 남아 묻혀 있던 지역의 전설과 역사, 문화를 발굴하셨더라면 ‘더 많은 숨겨진 이야기들이 빛을 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무척이나 아쉽다. 평소 왕성한 호기심과 활동으로 후배들의 본보기가 돼주셨던 선생님은 마냥 편한 분은 아니셨다. 깐깐한 선비 같은 성격에 쉽게 다가서기 힘들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한번 마음을 열면 누구보다 깊은 사랑을 나눠주셨던 분이다.

곧 선생님의 3주기가 돌아온다. 선생님이 지역에서 어떤 평가를 받으셨든 간에 원주를 정말 사랑하셨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 분들이 오래도록 지역에서 어른으로 자리 잡아주셨으면 좋겠다. 박 선생님이 그리운 이유이기도 하다.

후배 원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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