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0년 8월에 개봉한 영화 ‘복부인’은 국내 명감독 중 한 명인 임권택 감독이 만든 작품이다. 제목에서 보듯 줄거리는 뻔하다. 생활비를 걱정하며 살던 한 여성이 아파트 입주 당첨 현장을 찾았다가 복부인들을 만나게 되고, 아파트 당첨으로 하루아침에 큰돈을 벌게 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다뤘다. ‘나는 새도 떨어트린다’는 서슬 퍼런 전두환 정권 시절에도 복부인들은 활개를 쳤다. 그 어떤 ‘절대권력’도 절대 시장을 휘어잡을 수 없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자유시장경제 체제에서 규제로 시장을 관리하는 것은 ‘하수(下手)’다. 자유시장에서 규제가 남발되면 시장 위축을 넘어 ‘시장 왜곡’이 일어날 수 있다. ‘규제의 역설’이다. 부동산 규제 정책이 대표적이다. 부자들의 투기를 잡기 위해 아파트 재건축 기준을 강화하면 취약계층이 사는 낡은 아파트들은 재건축이 지연돼 가격이 내려간다. 부자들이 미리 투자했던 재건축 예정지는 희소가치가 높아져 되레 가격이 오른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규제의 역설에 빠진 정책이 적지 않다. 급격히 인상한 최저임금 정책이 대표적이다. 시급 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최저임금 인상 폭을 무작정 높이면, 자영업자나 중소기업의 인건비 급증으로 오히려 시급 노동자 일자리는 줄어든다. 아르바이트생은 일자리를 잃었고, 인건비 부담에 편의점주 가족들은 밤새 매장을 지켜야 했다. 자유시장경제 체제에서 규제성 제도가 ‘시장 실패’를 보완하는 최소한의 조치에 그쳐야 하는 이유다.
이달부터 시행에 들어간 공정거래위원회의 ‘대규모 유통업 분야의 특약매입 거래에 관한 부당성 심사지침 개정안’(특약매입 지침)도 규제의 역설 가능성을 보여준다. 백화점 등 대형 유통업자가 입점 업체들과 함께 할인 행사를 할 때 판매 촉진 비용의 50% 이상을 부담해야 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갑’인 대형 유통업자가 우월적 지위를 악용해 자신들의 할인 행사에 입점 업체들을 참가하도록 강요하고 그에 수반되는 비용도 떠넘긴다는 판단에서 나온 조치다. ‘을’인 입점 업체를 위한 조치라지만, 되레 입점 업체들의 불만이 터져 나온다.
비용 부담을 우려한 백화점들이 할인 행사를 대폭 축소하면서 재고 처분이나 소위 ‘땡처리’를 해야 하는 입점 업체들이 재고 소진에 애를 먹게 된 것이다. 마케팅이나 홍보 역량이 없는 입점 업체들은 그동안 백화점의 집객 능력을 이용해 재고를 처분해 왔다. 입점 업체들은 연초에 제품 생산 계획을 세울 때 할인 판매 물량이나 할인율 등을 계산에 넣고 생산량을 결정한다. 백화점의 할인 행사가 줄면 입점 업체들도 그만큼 재고 처리에 애로를 겪게 되는 것이다. 이미 우월적 지위를 남용한 불공정거래 행위나 부당한 압력 강요에 대한 처벌 규정이 있는 마당에 이런 제도는 이중 규제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불공정 행위로 시장질서를 흐리는 시장 참가자는 엄히 감독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규제를 양산하는 것은 벼룩 잡으려 초가삼간 태우는 것과 다름없다. “지금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입점 업체에 ‘갑질’을 할 수 있나. 많은 개선이 이뤄지고 있는데, 공정위는 여전히 과거의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다”는 업계 관계자의 얘기가 무겁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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