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국가끼리 전력망 묶어
타국서 재생에너지 생산·전송
풍력·수력으로 온실가스 줄여

유럽 “북해연안 에너지 생산”
10여년전부터 공동 프로젝트
각국기업 동참 전력벨트 구축

중·러, 중앙亞일대 자원 협력
일부지역 초고압 그리드 설치
“韓도 주변국과 협력 눈돌려야”


세계 곳곳에서 급증하는 전력 수요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슈퍼 그리드’ 프로젝트 붐이 불고 있다. 독일, 영국, 프랑스 등은 일찍이 유럽연합(EU)의 온실가스 감축 달성과 단일전력시장 구축을 목표로 해상·육상풍력, 수력 등을 활용하는 ‘유럽 슈퍼 그리드’를 구축했다. 중국과 러시아는 막강한 자본과 정치력을 무기로 세계 슈퍼 그리드 시장을 장악해 나가고 있다. 전 세계 주요국들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환경 문제에 슈퍼 그리드를 접목, 신성장동력을 창출하고 있는 것과 달리 한국은 기후 위기 속에서 갈피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슈퍼 그리드 프로젝트는 초고압직류송전(HVDC)을 통해 인접 국가의 전력망을 하나로 묶는 사업이다. 프로젝트가 추진되면 적은 일사량·낮은 풍속 등으로 재생에너지 생산에 부적합한 국가도 타국에서 이상적인 입지를 물색, 자국으로 전력을 공급받는 저탄소 발전을 꾀할 수 있게 된다. 지난 13일 인천대 기후환경 국제협력 클러스터 주관으로 인천 송도의 한 호텔에서 열린 ‘아시아 전력 시스템 연결’ 원탁회의에서도 아시아개발은행, 인천대, 카자흐스탄·중국 관계자 등 전문가 15명이 참석해 슈퍼 그리드 기술 구현을 놓고 치열한 논쟁을 펼쳤다. 기조 발표를 맡은 정내권(전 유엔사무총장 기후변화 수석자문관) 반기문재단 이사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 빌 게이츠,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 등 굴지의 사업가들도 전 세계적인 기후 위기를 성장 동력으로 전환할 수 있는 핵심기술로 슈퍼 그리드를 꼽고 있다”면서 “한국도 환경문제와 급변하는 기후에 대응하려면 더는 슈퍼 그리드를 외면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유럽에선 10여 년 전부터 슈퍼 그리드 프로젝트가 추진됐다. 신재생에너지 이용 확대를 통해 EU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고 동시에 이를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자는 각국의 공감대가 형성됐다. 이에 따라 독일, 영국,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덴마크, 스웨덴, 아일랜드, 노르웨이 등 10개국은 2009년 12월 북해 연안을 재생에너지 발전의 최적 입지로 선정하는 슈퍼 그리드 구축에 합의했다. 2050년까지 500GW 공급을 목표로 설정, 현재 16개국 기업이 동참해 대규모 신재생 전력 벨트를 구축하고 있다. 다른 한 축인 남유럽에서도 모로코 사막 지역의 풍부한 태양력·풍력을 활용, 2050년까지 유럽 전력 수요의 15% 공급을 목표로 ‘사막 에너지 공급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정내권 반기문재단 이사가 지난 13일 인천대 기후환경 국제협력 클러스터 주관으로 인천 송도의 한 호텔에서 열린 ‘아시아 전력 시스템 연결’ 원탁회의에서 슈퍼 그리드 프로젝트를 설명하고 있다.
정내권 반기문재단 이사가 지난 13일 인천대 기후환경 국제협력 클러스터 주관으로 인천 송도의 한 호텔에서 열린 ‘아시아 전력 시스템 연결’ 원탁회의에서 슈퍼 그리드 프로젝트를 설명하고 있다.

동북아 지역에서도 러시아와 중국이 대규모 슈퍼 그리드 프로젝트 추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양국은 동부 시베리아 및 몽골 등 중앙아시아의 풍부한 재생에너지 자원을 이용해 전력을 생산, 대규모 송전을 통해 이익을 내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러시아 최대 민간 전력기업인 유러시브에너고(EuroSibEnergo)는 2011년 중국 최대 국영 수력발전기업인 차이나양쯔전력(China Yangtze Power)과 합작기업 예스에너고(YES Energo)를 설립했고 이외에도 러시아 국영수력발전기업, 중국개발은행 등에서 양국 재생에너지 전력망 교류를 위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특히 중국의 상승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중국 최서단인 신장(新疆) 우루무치(烏魯木齊)부터 한국과 인접한 산둥(山東)반도까지 이미 80만∼110만 볼트에 달하는 초고압 슈퍼 그리드가 설치, 중앙아시아 지역의 재생에너지 발전 최적 입지를 선점 중이다.

한국은 역주행만 거듭하고 있다. 탈(脫)원전 정책을 추진 중인 문재인 정부는 “환경재앙을 불러올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를 묵살한 채 여의도 면적의 10배에 달하는 새만금호 30㎢에 세계 최대인 2.1GW의 발전단지를 조성하는 ‘새만금 수상 태양광 발전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 이사는 “정부는 2030년까지 전체 발전의 35% 수준을 재생에너지로 채우겠다는 포부를 내비쳤지만, 현재 6% 수준에 머물고 있다”며 “발전단가가 비싼 국내로 국한하는 재생에너지 사업에만 매몰하면 급변하는 기후 위기를 타개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정 이사는 이어 “슈퍼 그리드 프로젝트는 선점 효과가 크기 때문에 더 뒤처지면 재생에너지 패권을 중국 등 인접국에 뺏길 수 있다”면서 “지금이라도 서둘러 국외로 눈을 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천=김성훈 기자 tarant@munhwa.com

[ 용어설명 ] 슈퍼 그리드(super grid)

먼 거리에서 많은 양의 전기를 교환할 수 있는 광역 전송 네트워크이다. 주로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신재생 에너지를 이용한다. 큰 전력 공급을 위해 구축하는 대륙 규모의 광역 전력망으로, ‘메가그리드’ ‘대륙망’이라고도 한다. 유럽 슈퍼 그리드는 미래의 슈퍼 그리드로, 북아프리카, 카자흐스탄, 터키 등 다양한 유럽 국가와 유럽 국경 지역을 초고압직류송전(HVDC)으로 연결한다.
김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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