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바로티 ‘네순 도르마’

같은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파바로티’를 두 번 봤다. 한번은 영화를 보기 위해서, 한번은 사람을 보기 위해서. ‘1인치의 장벽’(자막)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화질과 음질 역시 영화의 품질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음악들은 장엄했고 인물들은 진지했다. 대화에도 골목이 있다면 이 부근에서 생성되는 ‘자판기’식 질문이 하나 있다. ‘어떤 음악이 가장 좋았고 누구의 말이 가장 인상 깊었는가?’ 지그시 자동응답 버튼을 누른다. “행복에 랭킹을 매기지 마세요. 높은 곳에 좋은 것을 배치한다고 뭐가 달라지나요?”

점수와 등수 매기는 데 취미 붙이면 귀한 걸 놓친다. 영화를 두 번 보니 주인공뿐 아니라 감독도 보였다. 마이클 샌델 교수가 ‘정의란 무엇인가’에 역점을 뒀다면 론 하워드 감독은 ‘운명이란 무엇인가’에 초점을 맞췄다. 세상을 놀라게 한 천재들의 탄생과 그들이 만난, 그들을 만든 사람들을 따뜻하게 조명한다. 수학자 존 내시의 삶을 그린 ‘뷰티풀 마인드’(2001)와 ‘비틀스:에잇 데이즈 어 위크-투어링 이어즈’(2016)도 그런 관심의 소산이었을 게다. 운명을 거역할 수 있을까. 운명과 사이좋게 지내려면 운명의 계획을 알아야 한다. “계획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냥 그 앞에 일들이 일어난 거다.” 하지만 운명은 가끔씩 다가와 체크한다. “네가 원하는 게 뭐야.” 가당치 않은 대답이면 뺨을 때리거나 대꾸도 없이 지나쳐 갈 것이다.

운명은 당대의 테너 주세페 디 스테파노를 아프게 하고 그 자리에 신인 루치아노 파바로티(사진)를 배치한다. 그는 준비됐고 준수했다. 시간이 흐른 후 다시 묻는다. “100년 후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덩치는 크지만 미소가 아름다운 남자’(피아니스트 랑랑의 언급)는 겸손하게 답변한다. “오페라를 친근하게 만든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운명은 마침내 이탈리아의 초등학교 교사 출신에게 훨씬 더 큰 교실을 갖도록 허용한다. 클래스가 클래식이 되는 순간이 왔다.

재능의 절반은 신에게 받지만 나머지 절반은 인간이 채워야 한다. 채우는 부분 역시 본인이 절반을, 타인이 절반을 분담한다. 그래서 누구를 만나냐는 게 중요하다. 누군가는 키워주고 채워주지만 누군가는 뺏어가고 무너뜨린다. 통 큰 아내(전처)와의 만남엔 타고난 재료가 작용(작동)했다. “그는 잘생겼죠. 그리고 목소리가 좋아요. 어떻게 그의 목소리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하지만 그를 사랑하는 사람이 너무 많았던 건 비극적 요소였다. 연출의 관점에서 보면 가족을 즐겁게 해주는 건 계획이지만 세상을 즐겁게 해주는 건 기획이다.

‘파바로티와 친구들’은 상상력과 추진력, 친화력의 산물이다. 록그룹 유투의 보컬 겸 작곡가 보노와의 나이 차는 무려 25년. “유령처럼 저를 따라다녔어요. 기 싸움의 대가죠. 결국은 꺾어버립니다.” 하지만 누가 이긴 게 아니라 함께 이기도록 한 사람, 그가 파바로티다. 좋은 곡을 받기 위해 보노의 집 가사도우미 테레사를 먼저 ‘캐스팅’한다. 포섭당한 도우미는 ‘특사’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시대의 명곡 ‘미스 사라예보’(1992)는 이렇게 탄생했다. 신념을 가진 기획자에게는 진실함과 간절함, 그리고 꾸준함이 필요하다.

파바로티의 음악인생을 4계절로 나누면 겨울은 채리티(자선)가 주제였다. 그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바탕으로 전쟁의 상흔이 있는 곳에 음악의 온실을 만들고 싶어 했다. ‘누구도 잠자지 마라/ 새벽이 오면 내가 승리하리라’.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 아리아 ‘네순 도르마’의 여운을 안고 극장 밖으로 나와 휴대전화 전원을 켜니 첫 화면부터 또 지겨운 싸움중계다. 참 시시해 보인다. 죽음을 앞둔 아빠 앞에서 파바로티의 딸 줄리아나가 한 말이 가슴에서 윙윙 울린다.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낭비하면 안 되겠구나.”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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