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대한발전전략연구원 이사장이 지난 20일 서울 광화문 연구원 사무실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조급해지고 자신이 없어지니까 발언의 강도가 점점 거세지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김종인 대한발전전략연구원 이사장이 지난 20일 서울 광화문 연구원 사무실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조급해지고 자신이 없어지니까 발언의 강도가 점점 거세지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김 이사장의 정치 이력

“정당 경험은 지금 살아 있는 사람 중에 내가 제일 오래 했다. 난 이런 일, 저런 일 다 경험한 사람이다.”

김종인 대한발전전략연구원 이사장은 스물셋의 나이에 조부(祖父)이자 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 김병로(街人 金炳魯·1887~1964) 선생의 비서실장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김 이사장은 “할아버지 옆에서 정치를 시작한 게 1963년도였다”며 “그때부터 (군정 종식을 위해) 단일 후보를 만들기 위한 3당(민정당·신정당·민우당) 통합을 지켜봤다”고 회상했다.

조부가 별세한 뒤 독일에서 유학한 김 이사장은 귀국 후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가 됐으나, 박정희 정부의 경제개발계획 수립에 참여하는 등 현실 정치 참여를 이어갔다.

1977년에는 보건사회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의료보험제도를 처음 도입하는 데 기여했다. 김 이사장은 “독일이라는 나라에서 공부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 기여할 수 있었다”며 “건강보험도 당시 모든 경제통이 반대하는 걸 끝까지 관철해 만들었다”고 말했다. 노태우 정부에서는 보건사회부 장관과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냈다. 특히 경제수석 시절 한·중 수교의 실무 역할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전국구·비례대표로만 5선 의원을 지낸 김 이사장은 2011년과 2016년, 정반대 진영 정당의 비상대책위원회에 참여하며 한국 정치의 중심에 섰다. 2011년에는 한나라당(자유한국당 전신)이었다. 당시 서울시장 보궐선거 참패와 당 소속 보좌진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디도스 공격 사건 연루 등으로 홍준표 대표 체제가 무너진 상황이었다. 김 이사장은 한나라당 비대위원으로 영입돼 2012년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152석을 확보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김 이사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내 덕분에 과반의석이 됐다면서 자신도 도와달라고 찾아왔다”고 전했다. 김 이사장은 경제민주화 등 박 전 대통령의 대선 공약을 총괄했고, 그 결과는 박 전 대통령의 당선이었다.

2016년에는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전신)의 비대위 대표를 맡았다. 총선을 목전에 두고 제1야당이 새정치민주연합과 국민의당 둘로 쪼개지면서 참패 우려가 높아지던 시기였다. 김 이사장은 당시 안보와 경제에서 중도층을 겨냥한 ‘우클릭’ 전략을 내세우고 과감한 현역 의원 컷오프로 세대교체에 주력했다. 결국 새정치민주연합은 20대 총선에서 1당에 올랐다.

윤명진 기자 jinieyoo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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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서울 출생 △중앙고, 한국외대 독일어학과 학사, 독일 뮌스터대 경제학 석·박사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11·12·14·17·20대 국회의원 △국민은행 이사장, 보건사회부 장관, 청와대 경제수석,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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