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故 황영준 작가 ‘조선화가 아카이브Ⅰ’展
두고 온 가족 평생 그리워하다
2002년 상봉 앞두고 세상떠나
애끓는 가족사랑 그림에 녹아
전시장 찾은 막내딸 ‘눈시울’
‘점묘법’ 이용한 독특한 화풍
조선화와 접목시켜 가치 높아
작품 1000여점중 200점 엄선
“한겨울 한줄기 온풍같은 작품”
매년 설 명절이 돌아올 때마다 속이 타는 이들이 있다. 바로 돌아갈 고향이 없는 이산가족들이다. ‘봄은 온다’는 타이틀로 인천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리고 있는 ‘조선화가 아카이브Ⅰ’ 전시의 작가인 고 화봉(華峰) 황영준(黃榮俊·1919∼2002) 화백도 ‘한국전’ 중에 가족과 생이별한 이산가족의 한 사람이다.
황 화백은 1988년 공훈예술가 칭호를 받은 북한 최고의 화가다. 수많은 점과 짧은 선들을 이용한 ‘점묘법’이란 독특한 화풍으로 그는 북한 특유의 미술 장르인 ‘조선화’에서 일가를 이뤘다.
화가로서의 화려한 삶과 달리 그의 일상은 외로움의 연속이었다. 그는 북에서도 남에 두고 온 처자식을 그리며 독신을 고집했다. 그런 그에게 2002년 금강산에서의 이산가족 상봉은 평생의 한을 풀 기회였다. 그러나 상봉행사 직전 갑자기 세상을 떠 결국 꿈을 이루지 못했다. 그즈음 북에서 촬영한 사진 한 장은 가족에 대한 그의 애타는 그리움을 잘 보여주고 있다. 수양아들 부부와 그 딸 셋과 함께 찍은 것으로 앞줄에 생선통조림이며 소시지 등 푸짐한 선물 보따리들이 놓여 있다. 52년을 만나지 못한 그 회한을 담아 최선을 다하고 정성을 들여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관람객들은 소나무와 매화, 금강산, 백두산 천지 등 자연과 ‘그네뛰기’ 등 일상을 묘사한 그의 그림에 감탄사를 연발하다가도 작가의 애끓는 사연에 ‘선물 보따리’와 함께 촬영한 사진을 접하게 되면 모두 숙연한 표정을 짓게 된다.
남편과 외손자를 동반하고 전시장에 온 황 화백의 막내딸 황명숙(72) 씨는 “아버지랑 두 살 때 헤어져 기억은 하나도 안 나지만 어머니(김인희, 12년 전 작고)로부터 저를 안은 아버지가 ‘크면 미술 공부를 시켜보라’고 말씀하셨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전시장에서 아버지의 마음이 담긴 그림을 만져보았는데 감정이 북받쳐 올라 견딜 수 없었다. 요즘 우울증이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충북 옥천군에서 태어난 황 화백은 15세 때 그림공부를 위해 상경, 교통부 총무과 철도박물관 화가로 일하던 1950년 9월 확인되지 않은 이유로 남쪽 아내와의 사이에 2남2녀의 자식을 두고 월북했다.
전시를 개최한 이길여 가천대 총장 겸 경인일보 회장은 “살얼음판을 걷듯 하고 있는 남북, 북미 관계를 생각할 때 전시장의 그림들은 마치 한겨울에 따스한 한 줄기 온풍처럼 우리의 마음속을 파고든다”며 “화봉이 평생에 걸쳐 남긴 1000여 점의 작품 중 200여 점을 엄선해 보여주는 이번 전시는 남과 북의 이산가족들이 70여 년 만에 만난다는 상징적 의미도 지녔다”고 말했다. 김종규 한국박물관협회 명예회장은 “여러 점의 국보와 보물을 소장한 가천박물관 설립에 이어 이처럼 훌륭한 전시를 유치, 상업도시 인천에 문화의 향기를 불어넣는 이길여 총장을 높게 평가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평단에서는 황 화백의 작품은 “미술사적으로 의미가 크다”고 말한다. 최원식 인하대 명예교수는 “조선 최후의 화원으로 운보 김기창(1913∼2001)과 월전 장우성(1912∼2005) 등을 길러낸 이당(以堂) 김은호(金殷鎬, 1892∼1979)에게서 그림을 배운 황 화백의 북한에서의 성공은 조선화의 뿌리에 남의 화맥(畵脈)이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고 설명했다.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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