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테이프·끈 제공중단 현장 풍경
보증 대여 방식 플라스틱박스
부피 작아 사실상 이용 외면
에코백 등 대체 장바구니 이용
집에서 직접 포장재 가져오기도
창고형매장엔 여전히 노끈 비치
고객 불편 vs 환경위해 불가피
전문가·소비자도 의견 엇갈려
올해 초 대형마트 3사(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각 지점의 계산대 근처 자율포장대 풍경은 살짝 달라졌다. 매장마다 자율포장대에서 제공하던 박스 포장용 테이프와 플라스틱 끈을 일제히 치운 것이다. 이들 3사는 환경부와의 자율협약에 따라 자율포장대의 테이프와 끈을 없애기로 했다. 처음엔 종이박스까지 제공하지 않으려는 계획이었지만, 고객들의 반발에 부딪쳐 박스는 제공하되 테이프와 끈은 비치하지 않기로 했다. 제도 시행 20여 일이 지난 현재 문화일보 취재진이 설 명절 대목을 앞두고 북적이는 수도권 각 지역 대형마트를 찾아 소비자들이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 현장을 들여다봤지만, 현장 상황은 ‘제각각’이었다.

같은 날 마포구의 한 대형마트는 설 명절을 앞두고 장을 보는 고객들로 북적였지만, 자율포장대는 이용자들이 없는 한산한 모습이었다. 아내와 함께 장을 본 한 60대 남성은 “박스는 있는데 테이프가 없네”라며 잠시 서성거리다 계산대에서 쓰레기종량제 봉투를 사서 물건을 담아 갔다. 박스 포장을 시도하려던 몇몇 고객들은 테이프가 없어 바닥을 고정할 수 없다며 난색을 표했다.주부 정모(여·44) 씨는 “올해부턴 장을 보러 집을 나설 때 에코백을 챙겨 나오고 있다”며 “박스로 포장을 할 때와 비교하면 한꺼번에 물건을 살 때 확실히 불편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반면 직장인 김명석(32) 씨는 “테이프나 끈 없인 박스 고정이 어려운 데다 계산대에서 다회용 봉투를 바로 살 수 있어 굳이 자율포장대를 이용하지 않고 있다”며 “엠티를 가는 대학생들은 장을 볼 때 불편하겠지만, 차가 있거나 소량으로 장을 보는 이들은 바뀐 환경에 곧 적응할 듯하다”고 말했다.
◇대형창고형 매장에선 여전히 테이프·끈 제공 = 테이프와 끈이 모든 대형마트에서 사라진 것은 아니다. 19일 취재진이 찾은 경기 지역 한 창고형 대형마트 자율포장대에서는 ‘찌익~’ ‘찍~’ 소리가 연신 이어졌다. 해당 매장에는 박스에 붙일 수 있는 테이프뿐 아니라 박스를 묶을 수 있는 노끈까지 예전과 다름없이 포장대에 비치돼 있었다. 이 매장을 자주 찾는다는 김인원(여·37) 씨는 “관련 규제에 대해 들어본 적은 있지만 신경 쓰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해당 마트 관계자는 “테이프·노끈 규제는 자율 협약이라서 매장의 종류별로 차이가 있다”며 “아직 테이프·노끈이 포장대에 설치돼 있는 매장의 경우 ‘대형 창고매장’ 개념이라서 정부와 업체 간에 맺은 자율협약상의 ‘마트’에 해당하지 않아 아직 테이프와 노끈을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관련 법규상 일반적인 ‘마트’나 ‘대형창고형 매장’의 구분은 없지만, 업체들은 자율협약에서 이를 구분해 테이프·노끈 제공 사항을 따로 구분했다”고 덧붙였다.

또 테이프·끈 대신 고객들이 이용할 수 있는 대체 포장 방법을 제공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취지에는 공감하며, 지속 가능한 사회를 추구하자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소비자는 없을 것”이라면서도 “다른 대안과 함께 제공해야 소비자들이 정책을 수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사무총장은 “지금은 대체 방법 없이 테이프·끈만 치웠기 때문에 탁상공론이라는 비판이 나온다”며 “테이프·끈을 대체할 수 있는 물품을 대신 비치하면 제도 정착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하지만 이번 조치의 실효성 자체에 의구심을 표하는 의견도 나왔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환경을 위해서라면 소비자가 다소 불편해도 양보할 수 있지만, 이번 협약은 소비자가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편익을 해치고 불편만 가중하는 조치”라며 “소비자의 행동 패턴을 고민하면서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고 말했다.최근 소비자들의 구매 형태가 오프라인 매장에서 온라인으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는 흐름에 역행하는 ‘벌거벗은 임금님’ 식 정책이라는 것이 이 교수의 지적이다.
조재연·김수현·서종민 기자 jaeyeo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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