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한 초(楚)나라가 작은 교(絞)나라를 침략했다. 교나라는 도성을 포위한 초나라 군대와 맞서 싸웠으나 참패를 당했다. 교나라는 어쩔 수 없이 성벽 아래에서 초나라와 굴욕적인 맹약을 맺었다. 이른바 ‘성하지맹(城下之盟)’이다. 맹약이라지만 사실은 항복 선언이다. ‘춘추좌전(春秋左傳)’에 나오는 이야기다. 지난 15일 미국과 중국이 1단계 무역합의문에 최종 서명했다. 중국 내에서 이를 두고 성하지맹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강력한 언론 통제사회라서 어느 누구도 공개적으로 발설하지는 않지만, 국민 사이에서는 중국 국가주석인 시진핑(習近平)을 향해 ‘굴욕’ ‘매국노’라는 비난까지 나온다고 한다.
시 주석이 이런 사회 분위기를 모를까. 워싱턴 백악관에서 개최된 무역합의문 서명식이야말로 시 주석의 마음 상태를 드러내는 상징적 장면이었다. 이번 무역협정은 국제법상 구속력을 갖는 만큼 조약에 가깝다. 그런데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함께 서명한 중국 측 대표는 류허(劉鶴) 국무원 부총리였다. 트럼프는 올해 다보스포럼에서 서명식을 하자고 제안했지만 시 주석의 거부로 부총리가 대신 참석한 것이다.
지난해 4월만 해도 시 주석은 협상에서 결코 밀리지 않겠다는 각오를 내비치기까지 했다. 미 대선이 다가올수록 농산물 수입 카드를 휘두르면 트럼프의 표밭에 악영향을 주게 되니 “지구전으로 가면 (중국이) 우위에 서게 된다”면서 자신감을 내비칠 정도였다. 그러나 시간은 중국 편이 아니었다. 점점 커지는 관세부과로 중국의 수출입은 엄청난 타격을 입었고, 경제 위축이 감당할 수준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시 주석으로서는 더 이상의 확전이 불가능하다고 판단, 2000억 달러 상당의 미국 제품을 추가 구입해 주는 선에서 휴전하자는 제안을 내놓을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그렇다고 앞으로 2단계, 3단계의 무역협상을 유리하게 끌고 갈 반전 카드를 쥐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일단 덮어둔 ‘산업보조금 금지’나 ‘국영기업 구조개혁’ 등은 모두 공산당 독재체제 유지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것들이다. 게다가 미국은 5세대(G) 등 디지털 패권 경쟁에서도 절대로 양보할 기색이 없다. 그런 판에 차기 대선에서 트럼프의 재선이 유력하다는 이야기마저 나온다. 시 주석에게는 2020년에도 어려움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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