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미국 배우조합(SAG)상 시상식에서 최고 영예의 앙상블상을 받았다. ‘기생충’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시작으로 전미비평가협회 작품상, 골든글로브 외국어 영화상 등 굵직한 상을 휩쓸고 있는 데다 우리의 관심은 온통 아카데미 상 수상에 쏠려 있어 SAG 상이라면 아카데미로 건너가는 징검다리쯤으로 여기지만 여기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세계 문화사적 의미가 있다. SAG상 역사에서 외국어 영화가 작품상에 해당하는 앙상블상을 받은 것은 ‘기생충’이 처음이다. 21년 전 이탈리아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가 외국어 영화로는 처음으로 후보에 올랐지만, 상을 받진 못했다. ‘언어’라는 굳건하고 전통적인, 문화적 벽 때문이었다.
세계 문화의 변방에 위치한 우리에겐 자막이 일상이지만 글로벌 패권국가이자 세계 영화 산업의 중심인 미국에서 자막은 장벽인 동시엔 고려할 필요도 없는 불필요한 장치로 여겨졌다. 미국인 그중에서도 특히 배우들이 자막에 강한 혐오감을 갖고 있어, SAG상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 엄청난 일이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현실이 이렇기에 봉 감독이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자막의 장벽, 1인치의 장벽을 뛰어넘으면 훨씬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다”고 말한 촌철살인의 수상 소감은 언어의 장벽을 허무는 발언이었고, ‘영어’로 상징되는 전통적 문화 권력에 대한 다양성 진영의 진격이라고 할 수 있다.
바벨탑이 상징하듯 언어는 오랫동안 장벽이었다. 통·번역을 거쳐야만 소통되는 현실적 이유와 함께 근본적으로 언어가 강제하는 구조 때문이기도 하다. 1930년대부터 언어학자들은 언어가 인간의 행동과 사고의 틀을 만든다고 봤고, 언어란 인간이 세계 및 타인과 관계하는 고유한 ‘구조’를 구성하는 것으로 여겼다.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은 결국 다른 세계를 구성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글로벌 정치·경제 패권이 작용하면서 영어로 된 텍스트와 콘텐츠가 세계 문화의 표준이 됐다. 기생충의 SAG 작품상 수상은 이 같은 구도에 균열을 준 꽤 혁명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기생충’에 앞서 이 벽을 깬 것이 바로 방탄소년단(BTS)이다. 얼마 전 BTS가 선공개한 ‘블랙 스완’(Black Swan)은 세계 93개국 아이튠즈 차트에서 1위를 했다. BTS의 음악과 퍼포먼스를 좋아하는 세계인들에게 한국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들이 공고한 언어의 벽을 깰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당연히 BTS의 경쟁력과 기생충의 작품성이겠지만, 그 배경에는 정치적 올바름, 다양성의 추구, 중심과 주변의 전복, 소수 권리에 대한 각성이라는 우리 시대 문화의 거대한 흐름이 깔려 있다. 근대 이후 우위에 섰던 언어 중심의 문화가 영상이나 이미지에 패권을 넘겨주는 대전환도 한몫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분명한 것은 이 같은 거대한 문화적 변화를 한국의 보이밴드와 한국 영화가 견인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음 달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기생충’이 주요 상을 거머쥐기를 바란다. 우리의 영광이고 한국 영화의 진격이며 우리 문화 전체에 엄청난 가능성의 세계를 열 수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는 새롭게 열리고 있는 문화적 흐름의 결과이자 이를 더욱 가속화시키는 일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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