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100년을 총괄하며 영화평론 60년 공력 담아
도전적 주장, 새로운 사실들을 숱하게 담아 ‘영원한 젊음’ 증명


“제 편지는 ‘아!’라는 감탄사로 시작합니다.” 영화감독 이장호는 평론가 김종원의 출판기념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후배 영화인으로서 김종원에게 주는 편지를 읽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1937년생인 김종원이 영화 평론을 한 지 60년이 됐는데도 여전히 현역으로 글을 쓰는 것에 대한 경외가 깃든 감탄사였다.

김종원이 펴낸 책 ‘영화와 시대정신’(작가 발행)을 읽다 보면 이장호 감독처럼 감탄사를 절로 흘리게 된다. 아! 한국 영화를 이토록 깊고 넓게 들여다본 글들을 칠순 이후에 썼다는 게 놀라울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김종원이 지난 2007년 평론집을 낸 이후 썼던 글 38편을 담고 있다. 1부 ‘영화와 역사’는 한국영화 태동기 모습을 되짚어보고 현대사와 함께 발전하는 과정을 그려냈다. 2부는 한국 영화사에 뚜렷한 기여를 한 영화인들의 작가· 배우론을 수록했다 . 마지막 3부는 주요 작품을 통해 시대적 변화와 제작 배경을 분석한 영화 일반론이다.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이 책은 한국영화사 전반을 훑고 있다. 또한 김종원 평론의 공력을 오롯이 담고 있다. 책 부제 ‘한국영화 100년, 나의 영화평론 60년’은 그것을 표현하고 있다. 한국영화평론가협회장을 했던 정재형 동국대 교수는 “영화 팬 뿐 만 아니라 영화학도들이 꼭 읽어봐야 할 책으로, 교재로 쓰면 좋겠다”라고 했다.

책의 맨 앞은 한국 영화 100년의 기점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의리적 구토’와 함께 ‘경성 전시의 경’이 또한 한국영화의 출발점으로 함께 이야기돼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영화계는 1919년 10월 27일 ‘의리적 구토’가 서울 단성사에서 개연된 날을 한국영화 기점으로 잡고 있다. 알려진 것처럼, ‘의리적 구토’는 신극좌의 연극 중 무대에서 도저히 실연할 수 없는 야외 활극 장면을 극과 연접시킨 12분 가량의 토막 필름이다. 이른바 연쇄극 필름인데, 이에 앞서 같은 날 단성사에서 실사 영화 ‘경성 전시의 경’이 상영되었다. 김종원은 이를 중시한다. 그에 따르면, 제작자 박승필(1875~1932)은 ‘의리적 구토’와 함께 경성 풍경을 담은 10여 분 짜리 단편 기록 영화 ‘경성 전시의 경’을 찍게 했다. 외국 영화만 편애한다는 세간의 비판을 받은 그가 한국 영화 제작에 도전한 것이다. 그런데 처음부터 연쇄극에 중점을 두고 부수적으로 실사 영화를 찍었던 탓에 ‘경성 전시의 경’은 주목 대상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김종원은 ‘경성 전시의 경’이 당시 영상 작품의 요건을 갖추고 극장에서 ‘의리적 구토’에 앞서 상영됐다는 점에서 한국 영화의 원류로서 함께 평가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새로운 주장을 내놓을 만큼 김종원의 시각은 젊다. 그러면서도 60여 년 영화 평을 했던 인물만이 보여줄 수 있는 공력을 과시한다.

‘한국영화 검열시대’라는 제목의 글 역시 그렇다. 일제가 지배한 무성영화 시대의 규제가 1980년대까지 지속했음을 숱한 사례를 통해 통찰한다. ‘애마부인’의 한자 제목이 애마(愛馬)에서 애마(愛麻)로 바뀐 것은 유명하다. 검열 당국이 너무 에로틱하다고 바꾸라고 했다는 것이다. 지금 시점에서 보면 소극이랄 수 밖에 없다. 내연관계인 여자를 뜻하는 ‘정부(情婦)’가 정조가 곧은 아내라는 뜻으로 ‘정부(貞婦)’로 바뀌었다는 것은, 희극적 비극이다. 그런 어둠 속에서도 한국 영화를 지켜온 영화인들에게 경의를 느껴야 하는 대목이다.

나운규의 ‘아리랑’을 다룬 글이나 ‘영화로 본 한일관계의 명암’ 등은 일제 공간에서 태어난 김종원의 민족 의식을 엿볼 수 있는 글이다. 한국과 일본이 이웃 국가로서 미래를 향해 더불어 함께 가야 하지만, 과거 역사를 잊지 않아야 한다는 것. 그래서 김종원은 일제 공간에서 나온 영화를 ‘조선 영화’라고 부르는 것을 반대한다. 일제가 우리에게 ‘대한제국’을 버리고 ‘조선’으로 돌아가라고 강요한 것에 따르는 꼴이기 때문이다. 일제 공간에서 나온 영화도 국호 대한제국을 따라‘한국 영화’라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인으로서 김종원은 이렇게 소망한다. “한국과 일본은 화해를 넘어 평등관계로 정착되어야 한다. 어느 매체보다도 대중 친화력이 강한 영화는 그 간극을 메울 수 있는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영화는 설득력이 강한 학습현장이기 때문이다.”

영화 작가·배우론을 담은 2부 맨 앞 인물이 심훈이라는 사실은 흥미롭다. ‘상록수’의 작가로 알려진 심훈이 항일 애국자이면서 또한 동시에 영화인이었음을 김종원은 부각한다.

‘목마와 숙녀’의 시인 박인환을 1세대 영화평론가의 면모로 재평가한 것도 눈길을 끈다. 박인환은 1950년 피란지 부산에서 문화계 인사 11명과 함께 영화평론가협회를 조직했다. 이 모임은 곧 해체하고, 그 뒤로 평필을 든 신진들이 이영일, 김종원 등이었다. 두 신진은 1960년 한국영화평론가협회를 발족했다. 이로써 보면, 박인환 등이 그 앞길에서 발자국을 내준 결과가 아닐까.

이 책은 대중가요 작사가로 알려진 박노홍이 극본, 연출을 했던 영화인이었던 것도 자세히 소개한다. 박노홍에 이어 황정순, 신상옥, 김지미, 김수용, 신성일, 이형표, 정진우, 고영남, 최하원, 석래명 등이 등장한다. 김종원의 시선은, 이들 영화인들의 작품 세계 뿐 만 아니라 이들의 삶이 지닌 아이러니와 미스터리 속으로 천착한다. 예컨대, 김지미와 신성일이 왜 불세출의 스타가 되었는지, 그 명예가 또 왜 멍에로 작용했는지를 독특한 시각으로 풀어낸다. 신상옥이 왜 ‘경계인’으로 살았는지도 김종원만의 시각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신상옥의 문예 영화에 감동을 받았던 독자라면, 그가 함경도 경성중에서 국어교사였던 시인 김기림을 만나 영향을 받았다는 내용에 주목했을 듯 싶다. 시인 김규동과 만화가 신동헌, 사회당 대표를 지낸 정치인 김철(작가인 전 민주당 대표 김한길의 아버지)이 신상옥의 중학 동문이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김종원은 이 책에서 “박인환과 감히 공통된 길을 걸어왔다고 할 수 있다”고 토로한다. 박인환처럼 자신도 시단에 등단했고 신문 기자 생활을 하며 영화 평론을 활동을 했다는 것이다.

1세대 영화평론가로서 탁월한 활약을 해 온 김종원은 그동안 시집을 낸 시인이라는 사실은 잘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출판기념회에서 “시 창작에서 뚜렷한 성취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 책은 김종원이 영화인이자 문학인임을 곳곳에서 알려준다.

김종원 평론가의 출판 기념회에서 후배 영화인, 평론가, 문인들이 함께 포즈를 취했다. 작가 제공.
김종원 평론가의 출판 기념회에서 후배 영화인, 평론가, 문인들이 함께 포즈를 취했다. 작가 제공.

이 책의 3부 마지막 글인 ‘문학과 영화 사이’가 대표적이다. 문예지 ‘시와 시학’에 쓴 이 글은 두 예술 장르의 공통점과 함께 독자성을 풀어낸 명문이다. 언제나 후학들을 감탄하게 했던 김종원의 평문에는 문학을 했던 문사로서의 내공이 들어 있음을 여실히 증명한다. 말하자면, 그는 영화와 문학 ‘사이’에서 문필가로서의 삶을 경영해왔던 것이다.

책의 프로필에 따르면, 김종원은 1937년 제주시에서 태어났다. 1957~1959년 월간 ‘문학예술’및 ‘사상계’에 시 추천을 받아 문단에 데뷔했다. 1959년 11월 월간 종합지 ‘자유공론’에 처음으로 영화에 관한 글(‘한국 영화평론의 위기와 과제’)글을 발표하였으며, 1959년 12월 격월간 ‘시나리오문예’를 통해 영화평론 활동을 시작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1960년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창립을 이끌었고 1981년에 제3대 회장을 맡았다. 1994년에는 청룡영화상 제1회 정영일영화평론상을 수상했다. 2001년에는 국제영화비평가연맹 한국본부 제2대 회장, 1998년부터 2014년까지 청주대학교 공연영상학부, 동국대학교 대학원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서 겸임교수를 지냈다. 현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상임고문으로 있다.

저서로 영화평론집 ‘영상시대의 우화’, ‘스크린 인생론’, ‘우리영화100년’, ‘한국영화사와 비평의 접점’ 1,2권 등과 시집으로 ‘강냉이사설(辭說)’, ‘광화문행’을 펴냈다.

그는 책 앞에 이렇게 썼다. “그동안 시를 쓰면서 영화평론의 길에 뛰어드는 과욕을 부렸다. 처음에는 마땅한 지면이 없어 자갈밭을 걷는 듯한 고초를 겪기도 했으나 선배 평론가들이 갖지 못한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특히 1980년대 이후 10여 년간 신문, 잡지 등 활자매체와 방송, 텔레비전 등 전파매체를 통해 영화리뷰를 쓰고 해설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행운이었다. 돌이켜 보니 그 시절이 저널리즘 비평의 황금기였다.”

오늘날 영화 평단이 과거와 다른 환경에 처해 있음을 그는 안타까워한다. “영화전문지가 없음은 물론, 일간신문에서 외부 평론가들의 리뷰가 사라진 지 오래다. 고작 인터넷에 올리거나 주간지에 두어 줄 남기는 별점 평 따위만 존재할 뿐이다. 이처럼 오늘날의 한국영화평단은 공교롭게도 60년 전 내가 이 길에 들어서면서 언급했던 것처럼 ‘위기’를 맞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말한다. “나는 아직도 현역”이라고. 그 당당한 증거가 바로 책 ‘영화와 시대정신’이다.

출판사 작가는 이 책을 장정본으로 고급스럽게 만들었다. 작가는 최근 성가가 높은 종합문예지 ‘쿨투라’를 발행하는 출판사이다. 손정순 작가 출판사 대표는 “우리 시대를 풍성하게 만들어 준 평론가에게 후학으로서 찬사를 담아 헌정하고 싶었다”고 했다.

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
장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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