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체가 바뀌면 인생이…’ 펴낸 필적학자 구본진 변호사
독립가 글씨엔 군더더기 없어
친일파는 글자 크기가 불규칙
성공한 故 정주영 회장 필체는
세로획 길고 가로획 꺾임 강해
손 불편해 입에 펜 물고 써도
손으로 쓴 글씨 특징 반복돼
필체를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의심스러우면서도 솔깃한 말이다. 그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보다 ‘가성비’가 훌륭한 일도 드물 테니 말이다. 그 말에 과연 근거가 있을까. 대한민국 1호 필적학자로 꼽히는 구본진(54) 변호사는 “글씨는 뇌의 흔적”이라고 주장한다. 구 변호사는 최근 출간한 ‘필체를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쌤앤파커스)를 통해 오랜 시간 다양한 필적을 연구해 온 경험을 바탕으로 글씨와 운명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지난 21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한 사무실에서 만난 구 변호사는 “필적학은 우리나라에선 생소하지만, 프랑스·독일 등 유럽에선 이미 오랜 역사를 가진 학문”이라며 “손이 불편해 입에 펜을 물고 글씨를 써도 손글씨와 같은 특징이 나타난다. 이는 글씨가 인간의 내면을 반영한다는 증거”라고 밝혔다.
구 변호사가 필체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는 검사 시절에 만난 수많은 범죄자의 자술서 때문이다. 구 변호사는 “강력부 검사로 20여 년 일하면서 조직폭력·살인·마약 범죄자의 자술서를 많이 접했는데, 이들의 필체가 남들과 다르다는 점을 발견했다”고 회상했다. 1970년대 연쇄살인범 김대두의 필체는 행간이 좁고 선이 선을 침범하는 전형적인 연쇄살인범의 필체였으며, 최근 전 국민을 충격과 분노에 빠트린 A 씨의 필체에선 거짓말을 잘하는 성격이 엿보였다는 게 구 변호사의 의견이다.
구 변호사가 본격적으로 필적학을 공부하기 시작한 때는 지난 2005년 독립운동가들의 글씨를 모으면서부터다. 처음에 구 변호사는 도자기나 그림 수집보다 가격 부담이 덜하다는 이유로 글씨를 수집했다. 이왕 수집한다면 올바른 일을 위해 인생을 바친 사람들의 글씨를 모으는 게 좋겠다는 생각도 이유였다. 이는 독립운동가와 다른 삶을 산 친일파의 글씨를 향한 관심으로도 이어졌다. 구 변호사는 “독립운동가의 글씨는 깔끔하고 군더더기가 없는데, 친일파의 글씨는 글자 크기와 행간이 불규칙했다”고 설명했다.
구 변호사는 성공한 사람들의 글씨가 보여주는 공통점으로 △필선이 단단하고 곧게 뻗어 있다 △오른쪽으로 갈수록 올라간다 △가로획을 길게 쓴다 등을 꼽았다. 구 변호사는 “단단하고 곧게 뻗은 필선은 삶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 우상향하는 글씨는 낙천적인 성향, 긴 가로획은 인내력을 의미한다”고 해석했다.
사람들 대부분 부자가 되기를 원하고, 부자는 어떤 습관을 지니고 있는지 알고 싶어 한다. 부자의 필체에는 어떤 특징이 있을까. 구 변호사는 자음 ‘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구 변호사는 “‘ㅁ’의 오른쪽 아랫부분은 자신의 마음 상태를 나타내는데, 이곳을 확실하게 닫는 사람은 빈틈이 없어 돈을 아무 데나 펑펑 쓰지 않고 절약한다”며 “‘ㅁ’에서 오른쪽 윗부분을 둥글게 쓰고 오른쪽 아랫부분은 닫는 건 부자들이 쓰는 글씨의 전형적인 특징”이라고 분석했다.
구 변호사는 대표적인 부자의 글씨로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의 글씨를 들었다. 구 변호사는 “정주영의 글씨는 모음의 세로획이 유난히 길고 모음의 가로획 끝부분의 꺾임은 강한데, 이는 일을 잘하고 인내심이 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두드러지게 큰 ‘ㅎ’과 ‘ㅊ’의 꼭지 부분은 최고가 되려는 의지가 강함을 보여준다”고 전했다. 어떤 글을 연습하는 게 좋을까. 구 변호사는 서명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구 변호사는 “우리가 평소에 긴 글을 쓸 일은 별로 없어도, 카드 결제처럼 서명을 하는 일은 많다”며 “고서화 감정에서 가장 결정적인 부분이 서명일 정도로, 서명은 짧아도 그 어떤 글보다 많은 특징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필체를 바꾼다고 인생이 바뀐다는 주장은 지나친 비약이 아닐까. 이 질문에 구 변호사는 “의식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온 사람의 글씨를 따라 쓰려고 꾸준히 연습하면 그만큼 그 사람의 삶의 방식에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고 조언했다.
정진영 기자 news119@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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