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 명지대 교수·정치학

흔히 설과 추석은 우리나라 정치판의 흐름을 좌우하는 명절이라고 말한다. 각지에 흩어져 있던 가족들 간에 각종 정보와 지역 민심을 교환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새는 유튜브와 방송 덕분에 정치에 관한 정보와 지식이 넘쳐흘러, 정보 교환의 필요성이 급격히 줄었다. 상황이 이러니 설과 추석은 정치적 관심사에 대한 논쟁의 장으로 성격이 변했다. 이번 설날 밥상머리에서는 검찰 인사가 주요 논쟁 거리 중 하나였다.

현 정권은 이번 검찰 인사가 검찰개혁의 마지막 수순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번에 좌천된 간부들은, 윤석열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 및 민정수석 간의 협의를 통해 임명된 인사들이었다. 따라서 법무부가 이번 인사를 ‘비정상의 정상화’라고 주장한다면, 이는 과거 자신들의 행위가 ‘비정상’이었음을 자인하는 셈이다. 그뿐 아니라, 인사가 과연 검찰개혁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도 궁금하다. 이번에 전보된 인사들이 과연 개혁의 걸림돌이었는지, 그리고 이번 인사가 검찰개혁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최소한 검찰개혁의 핵심은 살아 있는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는 ‘예외 없는 수사’라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과 관련해 매우 걱정되는 부분은 또 있다. 제도에 대한 신뢰를 정권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번 검찰이 청와대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도할 때, 청와대는 압수수색 대상이 특정되지 않았다며 거부했다. 이런 경우, 일단 압수수색에 응한 뒤에 자신들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게 올바른 순서다. 그래야만 제도에 대한 신뢰를 해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젠 청와대 비서관들이 검찰의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다. 검찰의 출석 요구서가 참고인으로서 출석을 요구한 것이었다고 하다가, 검찰이 참고인이 아니라 피의자임을 확인하자, 청와대까지 나서서 언제 참고인에서 피의자가 됐는지를 밝히라며 버틴다. 급기야 검찰이 해당 청와대 비서관을 기소하자, 그 절차에 심각한 하자가 있다면서 윤 총장을 겨냥하고 나선다. 권력의 핵심이 총출동해 검찰의 행위를 공격하는 모양새다. 설령 검찰의 기소 절차에 문제가 있다손 치더라도, 그것이 기소 내용 자체에 문제가 있음을 의미하진 않을 수 있다.

억울하다면, 청와대의 ‘입’을 통해 밝힐 게 아니라 검찰에 나가서 시시비비를 가려야 한다.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문제 제기는 그 후에 따로 해야 한다. 제도를 존중하는 모습을 보였어야 했다. 본인은 검찰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에 있으면서 검찰 출석을 거부하고, 그것도 모자라 억울하다면서, 검찰의 행위는 “기소 쿠데타”라고 하니 법치(法治) 실종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또, 공수처가 출범하면 윤 총장이 수사 대상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건, 공수처가 자칫 권력 핵심들의 의지대로 움직이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하게 된다. 이런 협박이야말로 권력에 의한 ‘법치 허물기’와 다름없다.

현 정권은 “반칙과 특권 없는 사회”를 주장한다. 하지만 일반 국민이라면 꿈도 꾸지 못할 일들을 권력 핵심들은 서슴없이 ‘실천’하고 있다. 또, 힘 있는 사람들에 의한 법의 자의적 해석도 난무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제도에 대한 신뢰가 추락해 법치가 제대로 이행될 수가 없다. 법치가 제대로 이행되지 못하는데 민주주의가 제대로 굴러갈 리도 만무하다. 그러니 지금 우리는 민주주의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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