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은 향모로 바구니와 약제를 만들지만 팔지 않는다. 그들의 삶은 하나라도 더 내 것을 만들기보다는 호혜성과 연결돼 있으며, 이는 자연과의 관계를 살린다. 사진은 환영의 노래를 부르는 북아메리카 원주민 출신 여성.  게티이미지뱅크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은 향모로 바구니와 약제를 만들지만 팔지 않는다. 그들의 삶은 하나라도 더 내 것을 만들기보다는 호혜성과 연결돼 있으며, 이는 자연과의 관계를 살린다. 사진은 환영의 노래를 부르는 북아메리카 원주민 출신 여성. 게티이미지뱅크

- 향모를 땋으며 / 로빈 월 키머러 지음, 노승영 옮김 / 에이도스

북아메리카 원주민 출신 학자
토박이 지식·과학 씨줄·날줄로
식물이 주는 가르침 섬세 표현

자연의 순리에 맡긴 파종법
옥수수·콩·호박 상생 사례
균형과 조화의 호혜성 제시


옛사람들의 지혜를 배워 오늘을 살고 내일을 열어가자고 하지만, 대개의 사람은 어제 일이 궁금하지 않다. 허덕이며 오늘을 살고 있거니와, 하루가 다르게 과학기술이 발전하는 시대에 옛것은 별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옛사람의 지혜를 버리는 순간, 미래 또한 없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북아메리카 원주민 포타와토미족 출신 식물생태학자 로빈 월 키머러의 ‘향모를 땋으며’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가르침인 “토박이 지혜”와 과학, 그중 식물이 인간의 삶에 어떤 가르침을 주는지 섬세한 언어로 표현해낸 책이다.

북아메리카 원주민 말로 윙가슈크(wiingaashk)라고 부르는 향모는 “감미로운 향기가 나는 어머니 대지님의 머리카락”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북아메리카 원주민 설화에 등장하는 ‘하늘여인’이 세상에 내려올 때 가지고 온 씨앗 중 하나였다. 토박이들이 “귀하게 여기는 제의용 식물”인 향모는 아름다운 바구니를 만들기도 하고, 지혈제 등 약초로 쓰이기도 한다. 저자는 하늘여인과 향모 이야기를 시작으로 토박이 지식과 과학 지식을 엮어내며 날로 쇠락하는 인간성, 그 와중에 파헤쳐지는 자연과의 공존 가능성을 모색한다.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은 향모로 바구니와 약제를 만들지만 팔지 않는다. “우리에게 그냥 주어진 것이기에 남들에게도 그냥 줘야만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대지가 주는 선물”을 비록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선물하면 “특별한 관계를 확립”할 수 있다.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는 선물은 존경과 감사, 치유 등의 힘을 불어넣어 주기 때문이다. “이따금 자신들이 알지도 못하는 손님들에게 선물을 만들어주려고 공동체 전체가 1년 내내 일하기도 한다”는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삶은, 하나라도 더 내 것을 만들기 위해 안달인 우리 모두에게 큰 울림을 주기에 충분하다. 저자는 이를 호혜성의 개념과 연결한다.

“감사의 문화에서는 선물이 호혜성의 고리를 따라 자신에게 돌아올 것을 모두가 안다. 이번에 주면 다음번에는 받는다. 주는 영예와 받는 겸손 둘 다 방정식을 완성하는 데 필요한 절반이다. 둥글게 풀을 밟으며 감사에서 호혜성으로 가는 길을 걷는다. 우리가 추는 춤은 직선이 아니라 원이다.”

호혜성의 실제 사례들은 책에 차고 넘친다. 토박이들은 옥수수와 콩, 호박이 서로를 생각하며 생장한다고 생각한다. “곧고 뻣뻣하게 자란” 옥수숫대는 동생인 콩의 줄기가 넝쿨을 이루도록 지지대 역할을 해주고, 대기만성형인 호박은 옥수수와 콩으로부터 멀어져서 잎을 틔운다. 자연의 순리에 맡긴 이 파종법을 토박이들은 “세 자매”라고 부른다. “세 줄기는 한데 어우러져 세상의 청사진 같은 균형과 조화의 지도를 새긴다.” 그 옛날 눈 내리는 밤, 여인 셋이 사람들의 집을 찾아왔다. 각각 노란색, 초록색, 주황색 옷을 입은 세 여인은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도 자신들을 환대한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실은 옥수수와 콩과 호박”임을 밝히고 “다시는 굶주리지 않도록 자신을 씨앗 꾸러미로 내어줬다”고 한다. 토박이들의 설화는 그대로 농사의 방법인 동시에 삶의 지혜일 수밖에 없다.

현대인의 욕망은, 그것이 무엇이든 필요 이상 거두려고 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미 오래전 토박이들의 삶에 이를 극복할 방안이 있다고 말한다. 바로 “받드는 거둠”(Honorable Harvest)이다. 이는 “우리의 취함을 주관하고 우리와 자연과의 관계를 빚고 우리의 소비 욕구에 고삐를 죄는 규칙”인데, 한마디로 “필요한 것만 취하라”는 것이다. 내일 먹을 것을 저장하는 생명이 더러 있지만, 과도한 축적으로 자신들이 두 발 딛고 선 대지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단연 인간뿐이다. 현대인들은 이 받드는 거둠을 “‘하지 말라’의 목록”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는 오히려 “‘하라’의 목록”이라고 강조한다. “받들어 거둔 음식을 먹어라. 한 숟가락 한 숟가락에 감사하라. 피해를 최소화하는 기술을 이용하라. 주어진 것만 취하라.”

‘향모를 땋으며’는 토박이 지식과 과학을 씨줄과 날줄처럼 엮으며 창조와 진화, 그것을 몸으로 살아낸 토박이들의 서사시를 들려준다. 그럼에도 읽는 내내 기쁨과 슬픔이 교차한다.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당위와 그렇게 살지 못하는 현실 사이의 격차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후기에서 “우리는 풍요의 씨를 뿌리지 않으며 미래의 가능성을 매번 갉아먹는다”고 말한다. 그 자체로 모두의 민낯이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저자 후기 마지막 말이 그 희망이다. “선물이 무엇이든 우리는 내어줘야 하며 세상을 다시 새롭게 하기 위해 춤을 춰야 한다.” 572쪽, 2만5000원.

장동석 ‘뉴필로소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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