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미 키멜, 엘런 드제너러스…. 요즘 귀에 자주 걸리는 이름이다. 미국 방송사의 간판 토크쇼 진행자들이다. 할리우드 영화를 통해 톰 크루즈나 앤젤리나 졸리는 익숙해졌어도 미국 토크쇼 진행자들의 이름까지는 아직 좀 낯설다. 사실 그리 알 필요도 없다.
그런데 최근 이들이 우리와 부쩍 가까워졌다. 전 세계를 뒤흔든 방탄소년단(BTS) 때문이다. 지난달 29일 방탄소년단이 정규 4집 ‘맵 오브 더 솔: 7(Map of The Soul: 7)’의 수록곡 중 하나인 ‘블랙 스완(Black Swan)’을 CBS 인기 토크쇼 ‘제임스 코든쇼’에서 처음 공개했다. 국내 가수가 새 노래를 맛보기로 보여주는 걸 ‘쇼케이스(Showcase)’라고 하는데 방탄소년단은 이걸 국내가 아닌, 수백만 명이 지켜보는 미국 방송에서 한 것이다. 과거 같으면 무척 낯설었을 풍경이다.
미국 토크쇼 하면 우리에게도 떠오르는 게 있기는 하다. 날카로운 인터뷰로 유명한 CNN의 ‘래리 킹 라이브’, 흑인 여성으로서 빼어난 입담을 자랑한 ‘오프라 윈프리쇼’, 심야의 ‘데이비드 레터맨쇼’ 등.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남의 나라, 먼 이야기’에 지나지 않았다.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른 이상, 상관할 일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방탄소년단은 요즘 ABC ‘지미 키멜 라이브’와 NBC ‘엘런 드제너러스쇼’에서 곡을 발표하고 근황을 이야기한다. 제임스 코든쇼의 반응도 무척 뜨거웠다. 신곡의 멜로디와 안무를 처음 보여준 것도 그렇지만 할리우드 스타 애슈턴 커처와 스튜디오를 뛰어다니며 오랜 친구처럼 숨바꼭질 놀이까지 하는 데엔 기가 찼다.
방탄소년단뿐만이 아니다. NCT 127, 몬스타엑스, 슈퍼엠 등 수많은 K-팝 그룹이 미국 토크쇼 나들이를 하고 있다. 2014년 싸이가 ‘강남스타일’로 깜짝 출연했을 때만 해도 ‘어쩌다 한 번’일 줄 알았다. 그러나 3년 전 방탄소년단이 ‘지미 키멜 라이브’에 출연한 이후로는 미국 방송에서 우리 가수를 보는 일이 어렵지 않게 됐다.
이는 K-팝이 장르적, 지역적 한계를 뛰어넘었다는 가장 확실한 사인으로 읽힌다. 국내에선 토크쇼가 관찰 예능에 밀려 부진한 편이지만 미국에선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방송사마다 심야 프라임타임에 경쟁적으로 편성하고, 당대 최고의 ‘입’을 사회자로 내세운다. 대화와 토론 문화가 발달한 미국에서 토크쇼의 영향력은 엄청나다. 다루는 주제도 비단 엔터테인먼트뿐만 아니라 정치·경제·사회를 아우른다. 웬만한 뉴스보다 정보가 빠르고, 딱딱한 보도보다 터치가 유연하다. 이들이 세계 트렌드를 장악한 K-팝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건 당연하다. 이들은 K-팝으로 시청자를 잡고, K-팝은 이들을 통해 홍보 효과를 톡톡히 누릴 수 있다. 누이 좋고 매부 좋다.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상을 일컬어 ‘로컬(Local)’이라고 했지만, 세계 영화시장에 대한 아카데미의 영향력을 누구나 인정한다. 미국 토크쇼 역시 ‘로컬 방송’에 불과하지만 그게 전 세계 수백, 수천만 명에 미치는 힘을 모르지 않는다. K-팝이 미국 전파를 타고 주변부를 넘어 중심으로 속속 스며들고 있다. ‘엘런 드제너러스쇼’가 K-팝의 일상적인 쇼케이스 무대가 될 날이 머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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