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극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의 신구·손숙 배우
- 신구
‘웰다잉’ 이야기하는 무대
혼신의 힘으로 정신착란 연기
나이가 드니 시야도 넓어져
- 손숙
가족이별과정 절절하게 표현
지난 공연서 놓친 부분 찾아
연극 본질에 충실하려고 노력
당혹스러웠다. 이렇게 금세 눈시울이 뜨거워지다니. 연극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의 연습실에서였다. 손숙 배우가 극 중 작은아들을 혼낸 후 독백하는 장면을 보며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앞의 연습 장면은 가족들이 함께 노래와 춤을 즐기는 대목이어서 시종 미소를 짓고 봤었다. 말 그대로 웃다가 우는 꼴이었다.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2월14일∼3월22일,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는 병으로 죽어가는 노인과 그 가족이 이별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신구 배우가 아버지 역을 맡았고, 손숙 배우가 그의 아내 홍매를 연기한다. 아버지의 병고를 곁에서 지켜보며 힘들어하는 둘째 아들 역은 조달환이 한다. 푼수 같지만 속정이 깊은 며느리 역은 서은경, 흥과 정이 넘치는 이웃집 아저씨 정 씨 역은 최명경이 맡았다.
지난달 31일 세종문화회관 연습실에서 만난 손숙 배우는 “대사 하나하나가 공감이 가는, 아주 좋은 작품”이라고 했다. “연극이라기 보다는 우리 일상의 현실로 받아들여지는 내용이에요. 최근에 제가 한 연극 중에서 ‘3월의 눈’과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는 언제든 또 하고 싶을 정도로 가슴을 울리는 작품입니다.”
신구 배우도 “출연 제안이 왔을 때 망설이지 않고 응했을 만큼 좋은 작품”이라고 했다. 그는 “억지로 생명을 연장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죽음을 받아들이는 웰다잉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두 배우는 신시컴퍼니가 제작한 이 작품을 네 번째 함께 하고 있다. 2013년 초연이 전 석 매진 성공을 거둬 이듬해 앙코르 공연을 했고, 2016년에도 다시 무대에 올렸다. 신구 배우는 “공연을 다시 하면, 그 전에 보이지 않았던 것을 보게 된다”며 “이번에도 대사의 호흡 등을 몇 군데 수정했다”고 밝혔다. 그는 무대에서 시종 병색을 보이지만, 간성혼수 질환으로 인한 정신 착란 증세를 연기할 때는 엄청나게 기운을 쏟아내야 한다. 올해 84세인 그에게 힘에 부치지는 않을까. 그는 “전혀 문제 없다”고 했다.
노년에도 연극 무대에 설 수 있는 동력을 묻자, 그는 서슴없이 “술!”이라고 답해 웃음을 짓게 했다. 그가 자전거 타기와 걷기 운동을 꾸준히 하는 이유가 ‘술을 마시기 위해서’라는 것은 연예계에서 유명하다. 그러나 그는 “연기 현장서 견디려면 건강관리를 잘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술을 즐기되, 심신의 건강을 해칠 정도로 과하진 않았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손숙 배우는 이번 공연을 하면서 지난번에 놓친 것을 새로 알게 됐다고 했다. “미국에 있는 형에게 전화하는 둘째 아들을 제가 혼내는 장면이 있잖아요. 둘째를 혼내지만, 사실은 병든 아버지를 찾지 않는 첫째 아들에 대한 섭섭함이 있다는 거죠. 지난 공연에선 그걸 놓쳤는데, 이번엔 그 섭섭함을 절절히 느꼈어요.”
그는 젊은 관객들이 이 작품을 ‘신파’로 받아들일 가능성에 대해 “과한 표현으로 억지로 울리려고 하는 게 신파인데, 이 작품은 절절한 감정을 표현해 저절로 감동을 이끌어내는 작품”이라고 강조했다. 올해 76세인 그는 긴 대사를 무대에서 까먹을 두려움은 없느냐는 질문에 “그런 두려움이 있으면 배우가 아니죠”라며 일소했다. 그는 “연기가 나이 들수록 더 좋아진다”고 했다. 젊었을 때는 예쁘게 보이려는 마음이 있었으나, 이제 그런 마음을 벗어나 극의 ‘본질’에 다가간다는 것.
신구 배우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익어간다는 표현이 있잖아요. 나이가 드니 세상 모든 걸 넓은 시각에서 바라보게 돼요.” 그는 자신을 따르는 중견 배우들의 이야기가 나오자 “(한)석규, (최)민식이는 이제 한창 무르익을 때지요”라며 웃음을 지었다.
두 배우는 올해 85세의 이순재 배우와 함께 자타칭 ‘대학로의 방탄노년단’ 일원이다. 노년에도 활발히 활약하며 후배들의 롤모델이 되는 까닭이다.
손숙 배우는 두 배우와의 인연을 이렇게 소개했다. “이순재 선생님은 어렸을 때부터 잘 알고 지냈는데, 작품을 함께 할 기회는 없었어요. 최근에야 작품을 함께 했으니 늦게 만난 새 남자라고 할까요(웃음). 신구 선생님은 젊은 시절 국립극단 시절부터 함께 공연했으니 호흡이 참 잘 맞습니다. 술자리를 함께하지 않아 더 가까워지지 않았는지 모르겠으나(또 웃음), 서로 기본적 예의를 지키면서도 동지처럼 지내는 지금이 참 좋습니다.”
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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