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라는 말과 ‘아버지’라는 말의 어감은 다르다. ‘아빠’는 친근하고 편하고, 뭐랄까 좀 유치한 느낌이라면, ‘아버지’는 예의 바르고, 더욱 성숙한 느낌이겠다. 어떤 책을 보니, 아이들에게 어른스러움을 강조하던 1960년대에 ‘아빠’는 자연스럽게 쓰이던 호칭이 아니었다고 한다. 이후에 사회가 핵가족화, 서구화되면서 자주 쓰이게 된 호칭이 됐다고 한다. 나아가 시집이나 장가를 가거나 철들 나이가 되면 ‘아빠’라는 유아어가 아니라 마땅히 ‘아버지’라고 불러야 한다고 한다. 돌이켜보면 나는 아버지를 한 번도 ‘아버지’라 부른 적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의 아버지는 내가 철들기도 전에 세상을 떠나셨다. 대학교를 휴학하고, 군대에 복무하던 시절 아버지는 암으로 투병 생활을 하시다가 끝내 이겨내지 못하셨다. 처음에 부대로 전화하셔 아버지의 건강 이상을 알리신 어머니는 그렇게 걱정할 일이 아니라고 하셨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휴가를 나가면 아버지를 병원에서 봐야 했고, 휴가를 나올 때마다 점점 더 야위어지고 고통스러워하시던 아버지를 보낸 것은 입대 후 1년 정도 지났을 무렵이었다.
아버지와의 기억 중에는 굉장히 친근한 것들이 많다. 친절하거나 자상하셨다기보다도 친근하셨다. 야구를 좋아하신 아버지는 일찍이 나에게 캐치볼을 가르쳐주셨고, 우리는 동네 공터에 나가 별 대화도 없이 캐치볼에 집중하곤 했다. 만화도 좋아하신 아버지는 일찍이 나에게 만화책을 빌려주셨고, 우리는 동네 만화책 대여점에서 각자 집에 돌아가서 볼 만화책을 오랫동안 공들여 찾곤 했다. 주로 보는 장르가 다르긴 했지만 재밌는 만화책을 서로 추천하기도 했고, 때로는 서로 고른 만화책이 재미없다며 핀잔을 하기도 했다. 아버지가 나의 만화책 선구안에 대해 농담조로 놀리면 나는 몹시 분한 심정이 되기도 했다. 아버지는 내게 훈계를 하신다거나 나를 혼내신 적이 별로 없었다. 물론 나의 모범적인(?) 생활 태도 덕분이겠지만, 어쩌다 내가 잘못하는 일이 생겼을 때도 꾸짖음은 단호하면서도 간단했다. 길게 잔소리를 늘어놓으신다거나 나중에 다시 그 일을 되짚는 경우도 없었다. 이에 대해 어머니는 선생님이셨던 아버지의 아버지, 즉 할아버지가 워낙 교육적이셨던 데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추측하시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아버지로서 나를 지지해주고 지원해주신 버팀목이기도 했지만, 아주 오랫동안 나의 친한 친구이자 가장 날 위해주는 친구였다. 재밌는 놀이를 함께하고, 티격태격하기도 하며 가르치려 하지 않고, 끔찍이 아껴주는 그런 친구. 나는 이제 만화책도 읽지 않고, 웹툰도 안 보지만 다시금 아버지와 동네 만화방에 가는 일을 상상한다. 세 권 이상 빌리면 어머니가 안 좋아하시기 때문에, 집에서 끝내주게, 재밌게 볼 단 두 권의 만화책을 고심하며 찾을 것이다. 카운터에서 서로 무엇을 빌렸는지 힐끔 보고, 관심이든 핀잔이든 한마디를 하겠지. 그러고는 간식을 사 가지고 느긋하게 집에 돌아오는 것이다. 아버지, 아니 아빠는 일상을 즐기는 마음, 인생의 작은 기쁨을 알려준 나의 첫 번째 친구였다. 여전히 즐겁게 잘 계시겠지요?
아들 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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