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 간 물리학자 / 서민아 지음 / 어바웃어북

“누군가는 내 그림에서 시(詩)를 보았다고 하지만, 나는 오직 과학만 보았다.” 점묘법을 개발한 신인상주의 화가 쇠라가 한 말이다.

뮤즈(muse)는 창작자들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다. 르네상스 시대 예술가들의 뮤즈는 문학, 역사, 철학, 신학 등 ‘인문학’이었다. 인문학을 기반 삼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같은 거장들은 불멸의 작품을 내놓았다. 그러나 르네상스 시대 이후 예술가들의 뮤즈는 ‘물리학’이었다. 책은 명화에서 물리학의 핵심 개념과 원리를 찾아 소개한다.

현대물리학은 17세기 ‘빛이 입자인가, 파동인가?’라는 질문을 계기로 태동했다. 빛에 관한 과학적 연구는 17세기에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현대물리학이 빛의 정체에 대한 열띤 토론과 논쟁을 거치는 동안, 미술계에서도 빛을 표현하는 방식을 두고 다양한 사조들이 쏟아졌다.

렘브란트와 베르메르는 그림에서 조명에 불과하던 빛을 그림 안으로 적극적으로 끌어안았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물체의 색은 물체가 반사하거나 물체를 투과한 ‘빛’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캔버스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곧이어 신인상주의, 입체주의, 야수파, 초현실주의, 옵아트 등 짧은 시간 다양한 사조가 등장하며 미술계가 요동쳤다.

신인상주의 화가 쇠라도 마찬가지였다. 쇠라는 그림은 선으로 그려야 한다는 미술사의 오랜 고정관념을 깬 화가이자, 직접 수많은 실험과 시행착오를 통해 자신의 이론을 스스로 증명했다. 그는 광학과 물리학을 집요하게 탐구했다.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단 한 점을 완성하기 위해 2년간 40여 점의 스케치와 20여 점의 소묘를 그렸다. 캔버스를 가득 채운 작은 점들은 물리학을 바탕으로 치밀하게 계산한 결과들이다

잭슨 폴록은 커다란 캔버스에 물감을 흘리고, 끼얹고, 튀기고, 쏟아부으며 온몸으로 그림을 그렸다. 우연의 중첩 효과에 기반을 둔 페인팅 기법은 양자역학 핵심 개념인 ‘불확정성의 원리’와 맞닿아 있다. 물리학으로 인한 뜻하지 않은 수확도 있었다. 고흐의 연인 세가토리는 모델로 가난한 고흐 앞에 섰다. 그렇게 탄생한 그림이 ‘카페에서, 르 탕부랭의 아고스티나 세가토리’다. 후일 이 그림을 엑스선으로 촬영했더니, 놀랍게도 밑그림에 다른 여인의 얼굴이 있었다. 가난한 고흐는 캔버스를 재사용했다. 빛은 가난 때문에 영원히 세상에 나오지 못할 뻔했던 그림을 보여줬다.

저자는 이화여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물리천문학부에서 ‘빛과 물질의 상호작용’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현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책임연구원 및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 나노-정보 융합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414쪽, 1만8000원.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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