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남 베이징 특파원

지난해 12월 30일 중국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시 신화병원 방사선과 의사인 리윈화(李雲華)는 병원 인근에 있는 화난(華南)수산시장에 간 적이 있는 입원 환자 여러 명이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유사 증세를 보인다는 얘기를 처음 들었다. 그날 저녁 그는 우한대 의대 동기들의 위챗 채팅방에서 중심병원 안과 의사인 리원량(李文亮)이 올린 글을 보고 깜짝 놀랐다. “우리 병원에서 화난수산시장에 다녀온 환자 7명이 사스 증세를 보인다. 다들 주의하자.” 그날 인터넷에는 “사스가 다시 나타났다. 우한시 위생건강위원회가 내부에 긴급 통지를 했다”는 글이 유포됐다. 결국, 우한시 위생건강위는 다음 날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폐렴 환자 27명의 발병 사실을 공표했다. 그러면서도 “명확한 사람 간 전염 현상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했다.

동기 채팅방에서 미확인 사스 발생 사실을 유포한 의사 8명은 유언비어 유포 혐의로 수사를 받았다. 중국의 유력 경제지 차이신(財新)은 지난 3일 리윈화 씨 등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이런 내용을 보도했다. 차이신은 모두 37명의 기자를 집중 투입해 우한 봉쇄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 의심 환자 요절 등의 제목을 담은 무려 4만 자에 달하는 심층 기획 시리즈를 주간지 ‘차이신저우칸(周刊)’에 게재했다. 한 달 정도만 앞당겨 차이신이 ‘제2의 사스’ 출현을 중국 전체에 경고했다면 이후 상황은 어떻게 진행됐을까. 우선, 우한시 위생건강위와 저우셴왕(周先旺) 우한 시장이 의료진 감염 사실과 폐렴 환자 숫자에 대한 왜곡 보고를 하지 못했을 것이다. 또, 환자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우한 한복판에서 대규모 요리 경연 잔치도 열지 않았을 것이다. 중국 설인 춘제(春節)를 맞아 우한 시민 500만 명이 이미 고향으로 떠난 뒤인 지난달 23일에야 봉쇄 조치를 내리는 우를 범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중국의 어떤 매체도 사태 초기에 우한 폐렴의 확산 가능성을 경고하며 철저한 방역과 예방을 촉구하지 않았다.

지난달 20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급기야 ‘전염병과의 전쟁’을 선포한 후에도 유력 관영 매체들은 변한 게 하나도 없다. 관영 CCTV는 ‘잔이칭(戰疫情·전염병과의 전쟁)’이라는 제목의 특별보도를 하루 종일 방송하고 있지만, 후베이 지역 병원들의 절박한 상황을 다룬 내용은 없다. 많지도 않은 퇴원 환자들의 모습을 반복해서 보여주고, ‘우한 힘내요(武漢加油)’류의 보도만 넘쳐나고 있다. 정부의 보도지침에 충실한 기사들만 양산되면서 우한의 실상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자 팡빈(方斌)이라는 누리꾼이 나섰다. 그는 최근 우한의 한 병원에서 5분 동안 환자 시신 8구가 자루에 담겨 나온 것을 봤다며 SNS에 동영상을 올려 중국 당국의 사망자 축소 의혹을 제기했다. 유력 언론이 팡빈의 역할을 했다면 훨씬 더 큰 파급력을 가졌을 것이다. 우한 출장을 다녀온 뒤 확진 판정 끝에 사망한 베이징의 한 환자의 지인은 위챗에 “우한 상황이 더 빨리 알려져 사람들이 경각심을 가졌더라면 그는 죽지 않았을 것이고, 현재와 같은 (중국의) 혼란한 상황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적었다. 사실을 보도하고 권력을 견제하는 비판 언론의 부재가 낳은 비극인 셈이다.
김충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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