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키즘은 일제강점기에 민족주의 및 공산주의와 함께 제3의 사상으로 민족해방운동을 이끌었다. 개인의 절대적 자유를 추구하는 아나키즘은 무엇보다 강제적인 권력에 의한 억압과 지배를 부정하고 개인의 자유의지를 실현하고자 하되 다른 사람의 자유의지도 존중하는 사상이다.
2001년 ‘한국의 아나키즘-사상편’과 2015년 ‘한국의 아나키즘-운동편’을 펴냈던 역사학자 이호룡 박사(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한국민주주의연구소 소장)가 그 완결편이라 할 수 있는 ‘한국의 아나키즘-인물편’(지식산업사)을 근 20년 만에 완성했다. 서울대 국사학과 출신으로 같은 대학에서 석박사를 한 저자는 국내 아나키즘 연구에서 독보적 위치를 차지한다.
민족해방운동을 이끈 아나키스트들의 사상과 활동상, 조직은 분단과 이념 대립의 현대사 속에서 배제되거나 묻혔으나 개인의 절대적 자유를 추구하는 정신은 가장 현대적인 정신적 유산으로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고도 할 수 있다. 저자는 “상대방이 나와 다르다고 해서 그들을 틀린 것으로 규정하지 않고, 나와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며 그들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고자 하는 사상이 아나키즘”이라고 정의하고 “민주주의를 심화시키는 데 아나키즘적 사고는 상당히 유용하다”고 말한다. 그는 “우리 사회의 권위주의가 많이 사라지고, 수직적 인간관계가 수평적으로 변해가고, 남녀평등이 확대되고, 집회 시위의 양상이 어느 조직의 주도보다 어느 사안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방식으로 변화해온 기저에는 아나키즘적 사고가 깔려 있다”고 평가했다.
이번 책에서는 민중직접혁명론자 신채호, 민족해방운동기지건설론자 이회영, 허무주의적 아나키스트 박렬, 테러적 직접행동론자 류기석, 아나르코생디칼리스트 이홍근, 민족전선론자 류자명, 자유사회건설론자 이정규, 아나키스트정당론자 유림 등 국내와 중국, 일본에서 활약한 8명의 아나키스트를 다룬다.
한국의 아나키스트들은 각지에서 당면 목표인 조국의 독립과 궁극의 과제인 개인의 자유와 해방을 위해 목숨을 내놓고 투쟁했으나 처한 조건에 따라 그 운동방식은 다양했다. 노동자 사회가 형성된 일본과 국내에서는 테러 및 선전활동과 노동운동 중심의 아나키스트 운동이 전개됐고, 상대적으로 노동자 사회가 약했고 일제의 직접적인 폭압에서 자유로웠던 중국에서는 혁명근거지건설운동이 주로 전개됐다.
신채호와 이회영은 유교적 소양을 바탕으로 아나키즘을 수용했다. 재일본 아나키스트들은 수용 초기의 개인주의적 아나키즘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극적인 삶과 영화로도 친숙해진 박렬이 대표적이다. 그는 제국 일본에서 활동했던 만큼 개인주의적 아나키즘에 경도됐고 허무주의에 천착했다가 해방 이후에는 민족주의 입장에서 ‘세계는 하나’라는 세계관을 제시하면서 민족 독립을 최우선 가치로 삼았다.
이처럼 한국 아나키스트들은 민족해방운동과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아나키즘을 받아들였기에 민족주의적 성향을 지니고 있었으며 이는 아나키즘의 본령에서는 벗어나는 것이기도 했다.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
주요뉴스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