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환 경제산업부 차장

‘고메소도(米騷動).’ 폭등한 쌀가격에 민심이 폭발해 ‘쌀 소동’이라고 불린 이 사건은 1918년 7월 일본 도야마(富山) 현의 한 작은 어촌에서 시작됐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은 전쟁을 이용한 수출이 호황을 맞으면서 부를 축적했다. 국가 경제는 유례없는 호황을 맞았지만, 그 대가로 물가가 폭등했고 특히 쌀값은 3배나 뛰었다. 농사짓던 젊은이들이 도시로 몰리면서 쌀 출하량이 떨어졌고, 거대 도매상들의 담합은 쌀값 폭등에 기름을 뿌렸다. 불만이 쌓였던 도야마 현 어촌 주부들이 정미소를 불태웠다. 전국에 쌀값 인하를 요구하는 봉기가 이어졌고, 결국 데라우치 마사타케 내각이 총사퇴했다. 역사적 사건은 의외로 작은 사건이 촉매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사태의 발단은 사소했지만, 엄청난 국민 저항 불씨가 발밑에서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해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까지 취소시켰던 칠레의 시위는 지하철 요금을 30페소(한화 50원) 인상한 것이 화근이었다. 레바논에서는 스마트폰 메신저에 230원 정도의 세금을 부과했다가 사드 하리리 총리가 사퇴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만성적인 민생고와 실업난이 칠레와 레바논 국민을 반정부 시위에 나서도록 내몰았다.

생산원가 몇백 원에 불과한 보건용 마스크 품절사태로 요즘 온 나라가 혼란스럽다. 중국 보따리상들의 사재기와 일부 악덕 기업의 매점매석으로 소비자들은 몇 배가 뛴 가격으로도 마스크 사기가 힘들다. 정부가 뒤늦게 6일부터 단속에 나섰지만 아쉬움이 크다. 이미 중국 보따리상들은 국내 마스크 제조공장은 물론, 해외 생산공장까지 찾아가 물량을 ‘싹쓸이’했다. “공장을 찾아갔더니 이미 사재기꾼들이 한바탕 휘저어 놓고 갔다더라”는 조선족 보따리상의 말은 ‘골든 타임’을 놓친 정부 대응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문화일보 2월 5일 자 4면 참조) 문재인 대통령이 “발 빠르게 대처하고 필요한 모든 조치를 강구하라”고 말한 시점(1월 27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도 10일이나 지난 대응이었다. 인도가 1월 31일부터, 대만은 이보다 이른 1월 24일부터 마스크 수출 금지 조치를 발동한 것과도 대비된다.

정부 대응은 아쉽지만, 지금이라도 매뉴얼을 뜯어고쳐야 한다. 국경 현장을 책임지고 있는 관세청 등 현장 부처에 더 많은 권한을 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번 마스크 매점매석 단속은 기획재정부가 ‘물가안정에 관한 법률’에 따른 장관 고시를 단축, 게재하면서 근거가 마련됐다. 보통 고시 지정이 보름에서 한 달가량 걸린다고 하니 지금과 같은 긴급 상황에서는 대응이 늦을 수밖에 없다.

“기재부가 움직여주지 않으면 현장에 있는 우리는 그냥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인천본부세관 공무원의 탄식에 청와대와 총리실은 귀를 기울여야 한다. 마침 정부는 지난해 관세법 가운데 통관분야 등을 따로 떼어 낸 ‘신(新) 통관절차법’을 제정하겠다고 밝혔다. 국경 현장을 단속하는 관세청에 긴급 대응 권한을 주어 이번과 같은 긴박한 상황에 현장 지휘관이 능동적으로 신속히 대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드 하리리 총리 사퇴까지 불러온 단돈 230원보다 마스크 생산원가가 몇 배 비싸다는 점을 정부는 간과해서는 안 된다.
임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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