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금융위기 한창일때
정치권력 맞서서 할말 하며
용기·미래의 비전 심어주고
포용·통합의 리더십 발휘
요즘 “경제 부총리의 리더십이 문제”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경제 정책을 둘러싼 혼선(混線)과 경제 컨트롤타워(사령탑)를 둘러싼 ‘패싱(passing·건너뛰기)’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한국 경제는 권위주의 정권에서도 유능한 경제 관료가 뛰어난 리더십을 발휘하면서 2차 대전 이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해왔다. 19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이후 한국 경제 발전사를 돌아봐도, 경제가 안정되고 발전한 시기는 명(名) 재상이 활동하던 때였다.
김대중 정부 초대 재정경제부 장관을 지낸 이규성 전 장관(재임 기간 1998년 3월∼1999년 5월)은 경제부처 공무원들이 지금까지도 가장 존경하는 경제 컨트롤타워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경제부처 장차관을 지낸 그의 후배들은 지금도 그를 “선비 같고, 실질을 숭상하고, 모든 일에 진지하고, 국가와 민족을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이 전 장관이 재경부 장관을 하던 시기는 우리나라가 ‘단군 이래 최대의 위기’라고 불렸던 외환위기를 겪은 때였다. 당시 금융·기업 구조조정을 담당하던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 겸 금융감독원장이 언론과 세간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지만, 위기 상황의 한국 경제를 전체적으로 조율하면서 끌고 나간 사람은 이 전 장관이었다.
이 전 장관에 대해서는 흔히 ‘경륜의 이규성’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그가 재무부 장관을 역임한 뒤 건양대 교수로 공직에서 물러났다가 다시 재경부 장관에 임명됐기 때문에 경험이 많다는 뜻이기도 했지만, 살아 있는 권력인 대통령과 타협할 것은 타협하고 주장할 것은 끝까지 관철하는 법을 알고 있었고, 다른 부처 장관들을 아우르면서 리더십을 행사하는 데 능했기 때문이다.
역대 경제 컨트롤타워 중에서 지금까지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했다는 평가를 받는 또 다른 사람은 이명박 정부 2대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낸 윤증현 전 장관(〃 2009년 2월∼2011년 6월)이다. 윤 전 장관은 ‘따거(大哥·중국말로 큰형님)’라는 별명처럼 선 굵은 보스형 리더십의 전형(典型)을 보여준다. 그는 글로벌 금융위기에 직면한 상황에서 사소한 격식 등에 얽매이지 않고 우리나라의 중앙은행인 한국은행 등과의 관계를 잘 풀어내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윤 전 장관이 기재부 장관 취임 직후, 청와대의 반대를 무릅쓰고 “올해(2009년)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고 밝힌 것은 지금까지도 대단한 용기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때나 지금이나 최고 정치권력인 대통령은 “경제 지표가 나빠지고 있다”는 얘기를 듣기 싫어하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그가 경제 상황을 냉철하게 진단하면서 시장에서 정부와 경제 정책에 대한 신뢰가 높아졌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현실을 정확히 진단하는 경제 사령탑이라면 대책도 현실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것을 내놓을 것이라는 믿음이 커졌기 때문이다. 다른 모든 문제와 마찬가지로 경제 정책도 무신불립(無信不立·믿음이 없으면 제대로 할 수 없다)이다.
진념 전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 2000년 8월∼2002년 4월)은 ‘경청의 아이콘’이다. 부총리에 임명되기 전 기획예산처 장관, 노동부 장관, 동력자원부 장관 등을 역임해 ‘직업이 장관’이라는 말을 들은 진 전 부총리는 경제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외환위기 직후 기아그룹 회장(1997년 11월∼1998년 3월)을 역임하면서 자동차 생산공장 노동자들과 끈질기게 대화한 경험이 있어서인지 경제 부총리로 재직할 때도 각계각층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애를 많이 썼다.
언론 매체와 접촉하는 빈도도 다른 부총리보다 훨씬 많았다. 경제 정책에 대해 언론 매체에 비판적인 기사가 나오면 기자들에게 “당신이 정책 입안자라면 어떻게 하겠어?”라고 묻기도 했다. 가끔은 기자들의 아이디어를 실제 정책에 반영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이건 당신들이 낸 아이디어니까, 비판하면 안 돼”라고 으름장을 놓곤 했다. 그는 기업, 노동조합, 경제단체뿐만 아니라 경제와 관련이 있는 기관이나 단체라면 어느 단체, 어떤 사람이라도 만나 열린 마음으로 의견을 들었다.
김병일 전 기획예산처 장관(〃 2004년 1월∼2005년 1월)은 옛 선비처럼 길이 아니면 절대로 가지 않는 옳은 몸가짐, 마음가짐으로 선후배들의 두터운 신임을 얻었다. 그는 장관이 된 지 딱 1년이 된 2005년 1월 26일 간부들을 모아 놓고 갑자기 사의를 표명하면서 “역량에 비해 지나치게 나라의 부름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한다”며 “후진들을 위해 지금 시점에서 그만두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가 예산총액배분자율편성(톱다운) 방식 도입과 중기재정계획 수립 등 업무에서 성과를 내고 있었고, 청와대 등 권력 핵심부에서 나가라는 아무런 언질도 없었는데 갑자기 사의를 표하자 오히려 청와대가 당황하기도 했다. 김 전 장관은 현재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본인의 생각을 담은 ‘퇴계의 길을 따라’ ‘선비처럼’ ‘퇴계처럼’ 등의 책을 잇달아 펴냈다. 김 전 장관은 “후배들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공직을 떠난 뒤 경제와 관련된 어떤 의견도 내놓은 적이 없을 만큼 자기 관리가 철저해 지금도 후배 공무원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통계청장을 역임한 이인실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그동안 후배 공무원들의 존경을 받았던 명 경제 사령탑들은 정치권력에 대해서도 할 말은 하는 용기와 미래에 대한 비전을 동시에 갖춘 분들이었다”며 “다른 부처 장관들을 아우를 수 있는 통합의 리더십을 갖고 있었다는 점도 공통점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의 뛰어난 경제 사령탑과 비교하면, 요즘 경제 사령탑들은 후배 공무원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지, 여러 경제 부처에 대한 장악력을 갖고 있는지, 다른 부처를 폭넓게 아우르는 포용과 통합의 리더십을 갖추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조해동 기자 haed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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