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 상승이 불가능한 현 세태를 정확하게 고발하는 영화인가? 낭만적인 비전으로 미래를 낙관하는 예언적 영화인가? 알쏭달쏭하다.”
아카데미 작품상 등을 받으며 세계적으로 화제에 오른 영화 ‘기생충’에 대한 평문의 마지막 구절이다. 이런 내용은 새 책 ‘영화, 내 맘대로 봐도 괜찮을까?(미다스북스 발행·사진)’에 담겨 있다.
책은 ‘생존 성적표가 남긴 의문들’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영화 ‘기생충’을 다루고 있다. 이에 따르면, 극 중 세 가족이 기생하는 숙주는 건축가 남궁현자가 지었다는 집이다. 이 집이 자신의 몸으로 들어온 인간 기생충들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영화가 말하려는 메시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가난한 자는 영원히 어떤 공간에 기생해서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인가. 각 가족의 아버지를 다 죽여버리거나 감금시키는데, 그것은 기성세대와 차세대의 단절을 주장하려는 것인가.
“‘ 기생충’은 의도했든 아니든 계급 갈등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런 마당에 의미를 모호함으로 뭉개버린다면 관객은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저자는 영화 마지막에 기우(최우석 분)가 지하에 있는 아버지 기택(송강호 분)을 구하기 위해 다짐하는 대목의 의미도 모호하다고 지적한다. 돈을 많이 벌어서 집을 사겠다는 다짐인데,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것이니 얼마나 황당하냐는 것이다.
이 책은 이처럼 영화 내부를 깊숙하게 들여다본다. ‘기생충’이 세계적으로 상을 휩쓰는 이유에 대해 설명한다면 다른 글이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내부를 들여다보니 감독이 불편한 풍경을 만들어 놓은 이유에 대해 질문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그 영화의 의미를 새겨서 해답을 찾게 된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다른 영화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작품 내부로 천착해 들어가서 저자만의 시각으로 독특한 질문을 내놓거나 특유의 해석 세계를 풀어 놓는다.
저자 이현경은 고려대에서 심리학, 현대소설, 영상문화를 공부했다. 2006년 제11회 ‘씨네21’ 영화평론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이후 각 매체를 통해 평론 활동을 해 왔다. 대학에서 영화이론, 영상문화, 시나리오 등을 강의했다. 단편영화 ‘행복엄마의 오디세이’(2012), ‘어른들은 묵묵부답’(2017)의 각본을 쓰고 연출을 한 적도 있다. 이번 책에 실린 글들엔 이런 경험들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책의 세목을 살피면, 대중적으로 흥행한 작품도 있으나 대개는 그렇지 않다. 극장 관객들을 크게 모으지는 못했어도 주목할 만한 값어치를 지닌 영화들이 많다. 그것을 3개의 주제로 크게 나눴다. ‘우주적 잔인성과 세상이라는 함정’ ‘선택과 판단이라는 삶의 명령’ ‘원초적 공포와 일상의 불협화음’ 등.
제1부의 맨 앞글 ‘여자의 바람은 위험하다?’는 기존 가족 질서 붕괴를 담은 영화를 소재로 하고 있다. ‘주노명 베이커리’, ‘바람난 가족’이 바로 그 작품들이다. 이 작품들을 들여다본 끝에 저자는 촌철살인의 금언을 내놓는다. “책임을 져줄 남자는 소통이 잘되지 않고 소통이 되는 남자는 책임감이 없는 까닭은, 결혼이나 가정이라는 제도 자체가 안고 있는 모순이다. 이 모순에는 정답이 없다. 다만 여자들은 남자의 어깨에 매달린 책임감이라는 추를 덜어주고, 남자는 여성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이 책은 꼭 처음부터 차례대로 읽을 필요는 없다. 읽는 이가 우선 끌리는 작품, 혹은 주제부터 읽어도 좋겠다. 예컨대,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형님’이라고 칭했던 쿠엔틴 타란티노 팬이라면 제5부의 ‘바스터즈:거친 녀석들’부터 읽으면 된다. 공포물이나 스릴러물 마니아라면 ‘추격자’ ‘검은 사제들’ ‘밤을 걷는 뱀파이어 소녀’ 등이 나오는 제3부가 특별히 관심이 갈 것이다.
성장 영화를 통해 휴머니티를 맛보고 싶은 독자라면 4부가 매력적일 것이다. ‘미스 리틀 선샤인’ ‘완득이’ ‘500일의 섬머’ 등을 만날 수 있다.
저자는 책에 이렇게 썼다. “영화를 마음대로 봐도 되듯이 평론도 마음대로 읽어도 괜찮을 것 같다. 평론은 사방팔방으로 뻗어 있는 표지판처럼 영화라는 길의 방향만을 짧게 가리키고 있다. 다른 글은 몰라도 적어도 내 글은 그런 성격이다. 팔 길이 정도의 방향 표지판이 무기력해 보일 때도 있지만 때로 엄청난 도움이 되기도 한다. ‘이런 영화도 있네. 이 영화 한 번 보고 싶다’라는 마음이 들게 하는 걸 가장 중요한 기본이라고 생각하며 글을 써 왔다.”
장재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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