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찬 동작이 일품인 ‘숨은 강자’
파머·니클라우스·트레비노 등
최종일 서로 견제속 타수 잃고
8언더 몰아쳐 첫 메이저 우승
공교롭게도 밀러는 1, 2라운드에서 파머와 같은 조였다. 아니의 군대들이 11년 전 니클라우스에게 했던 것처럼 밀러를 향해 고성과 야유를 퍼부었다. 밀러는 그럼에도 2라운드 후 2언더파 140타로 니클라우스와 함께 공동 3위를 달렸다. 하지만 불운은 3라운드에서 시작됐다. 코스 정보를 담은 야디지 북을 숙소에 두고 나왔다. 아내가 뒤늦게 가져다 준 야디지 북으로 경기를 마쳤지만 3라운드에서만 5타를 잃었다. 마지막 4라운드는 파머를 포함해 4명이 6언더파로 공동선두였다. 2오버파로 12위였던 밀러는 챔피언 조보다 1시간 앞서 출발했다. 그를 눈여겨보는 갤러리나 팬이 없는 가운데 밀러는 외롭게 경기를 이어나갔다. 갤러리들은 모두 기라성 같은 영웅들이 속한 선두 조에 모여 있었다. 밀러는 첫 홀부터 4번 홀까지 버디 행진을 이어나갔다. 그린 적중률 100%였다. 5번 홀 이후 나머지 홀에서 버디 5개를 더했고, 보기는 1개만 기록했다. 마지막 날 밀러는 8언더파 63타를 쳤다. 파71이던 오크몬트뿐 아니라 역대 메이저대회에서 처음 나온 타수였다. 이 기록은 2016년 디 오픈에서 헨리크 스텐손(스웨덴)이 경신하기까지 무려 42년간 깨지지 않았다. 일찌감치 경기를 마친 밀러는 합계 5언더파 279타였다.
파머와 니클라우스, 트레비노 등 선두 그룹은 서로를 견제하느라 출발 때보다 4타나 잃고, 2언더파로 공동 3위로 밀려났다. 무명 존 실러가 밀러에 이어 1타 차 준우승을 차지했다. 밀러는 이렇게 자신의 첫 메이저대회 트로피를 손에 넣었다. 밀러는 1974년 디 오픈을 포함해 한해에만 시즌 8승을 올리며 상금 랭킹 1위에 올랐다. 밀러는 1960년대의 파머 이래 최고의 선수로 군림했다. 밀러는 이후 시니어투어(현 챔피언스투어)에 진출한 뒤 방송 해설가로 변신했다. 밀러는 골프채 대신 마이크를 잡고 NBC 골프 해설가로 인기를 얻으며 그 어떤 골프영웅들도 하지 못했던 반전을 일궈냈다. 1990년부터 30년 동안 골프에 관한 해박한 지식과 이미지로 골프팬들의 곁에 늘 있었던 그는 2019년 해설가로서 은퇴를 선언했다.
골프역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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