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뒤에도 다른 위기 가능
근시안적 대응으로 더 큰 비용
다양한 재난 대비 협의체 시급
중국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우한 폐렴)에 대한 한국 정부와 시민들의 대처는 놀랍다. 확진자 동선을 자세히 공개하며 감염 확산을 최소화했고, 19일 오전 현재 단 한 명의 사망자도 내지 않을 정도로 전방위적인 노력을 펼쳤다. 중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나라임에도 중국인 입국 금지를 하지 않고 이룬 성과라 더욱 놀랍다. 크루즈선 입항을 거부해 오히려 대거 감염자를 낸 일본이나 초기 대응에 실패해 감염 확산을 막지 못한 기타 아시아 국가들에 비하면 더욱 그렇다. 메르스와 세월호 참사의 학습효과가 컸던 것 같다. 덕분에 전과 달리 대통령의 지지율도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런데도 우한 폐렴 사태는 한국에 큰 숙제를 안겼다. 이번 사태는 신종 바이러스의 출현이라는 전염병의 문제를 넘어서서 허술한 중국의 위기관리 시스템에 기인했으며, 사안은 다를지 몰라도 비슷한 위기는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중국 정부의 초동 대처가 빨랐더라면 이처럼 커다란 파장과 희생을 낳지 않았을 것이다. 우한 폐렴의 이상징후를 처음 감지한 의사들을 징계하고 언론을 통제하면서 위기관리의 가장 중요한 신속성과 투명성이 사라졌다.
더 나아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의 소통과 협조 부족이라는 중국 공산주의 거버넌스의 한계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스탠퍼드대 사회학과 동료 교수인 저우쉐광(周雪光) 교수는 중국 정부의 이러한 구조적 한계점을 오래전부터 지적해왔지만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 이번 사태가 터지자 위챗을 비롯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그의 과거 논문과 발언들이 화제가 되고 하루 만에 수천 명에 의해 공유됐다고 한다. 또한, 중국 내 가장 리버럴한 매체들과 인터뷰도 했지만 결국 정부 검열로 인해 게재되지 못했다고 한다. 한때 미국보다 거버넌스 면에서 낫다고 큰소리친 중국이지만 그 한계가 극명하게 드러났다. 이미숙 문화일보 논설위원 지적대로 우한 사태로 ‘중국 모델’은 끝났는지 모른다.
이번 사태는 어떻게든 진정되겠지만 유사한 일은 또 일어날 것이며 그 여파는 한국에 고스란히 전해질 것이라는 데 한국의 고민이 크다. 이번엔 신종 감염병으로 시작됐지만, 향후엔 재난이나 원자력 사고 등 중국의 위기관리 체제를 뒤흔들 사안이 수두룩하다. 그리고 한국은 직접적 영향권 안에 있다. 미국은 이미 1월 말 중국인 입국 전면 금지를 선포하고 중국을 다녀온 모든 미국인과 해당 가족들에게 14일간 자가격리 조치를 하는 등 발 빠른 행보를 보였다. 일본이나 몽골, 싱가포르, 심지어 북한마저도 중국인 입국 금지를 선언했지만, 한국은 실행하지 못했다. 사드 보복의 트라우마를 기억하는 한국으로선 중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원천봉쇄 없이 사후처리에 집중하느라 엄청난 사회·경제적, 심리적 비용을 지불한 것이 최선이었는지 득실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여느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미국과는 달리 한국 사회는 거의 공포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 미디어를 가득 채운 우한 폐렴 관련 보도에서부터 온라인 졸업식이라는 희귀 풍조까지, 시민의 불안과 공포, 불신이 확산되며 한국 사회와 문화, 경제 등 다방면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확진자의 동선을 따라 백화점, 식당, 영화관은 물론 병원과 교회까지 폐쇄됐고, 위축된 소비심리로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 있던 소상공인, 비정규직, 일용직 노동자 등은 직격탄을 맞았다. 중국에 대한 경제의존도가 높고 중국 유학생, 조선족 동포가 많이 사는 한국에서 퍼지고 있는 중국인 혐오 정서는 더욱 우려스럽다. 엄청난 재정적·인적 자원을 쏟아부으며 우한 폐렴의 위기는 넘긴 듯 보이지만, 사회·경제적 그리고 한·중 관계 전반에 미치는 영향들은 현재진행형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현 상황을 ‘비상 경제 시국’이라며 특단의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지만, 장·단기적 측면을 포함한 그 포괄적인 여파는 한참 후에야 명확히 드러날 것이다.
향후 중국발 유사한 사태가 발생한다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이번처럼 중국의 눈치를 보며 엄청난 사회·경제적 비용을 치를 것인가? 이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긴밀한 논의와 합의를 통해 ‘한·중 위기관리 매뉴얼’을 만드는 것도 고려해 봐야 한다. 또한, 국내에서 반중 정서가 커지는 것보다는 차라리 타 국가들처럼 초기에 중국인 입국 금지 같은 조치를 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한·중 관계 발전에 나을 수도 있다. 정부는 이번 사태를 교훈 삼아 사회·경제·외교 등 다방면을 고려한 종합적인 대책 마련에 힘써야 할 것이다. 그래야 중국발 위기가 발생했을 때 우왕좌왕하다 골든타임을 놓치거나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지 않고 차분히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적 처신이나 반중국 정서는 모두 경계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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