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미 문화부장

전 세계 57개 영화제에서 130개가 넘는 트로피를 거머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 또 하나의 상을 추가한다면 이 상일 수 있겠다는 ‘내 멋대로 재밌는 상상’을 해본다. 바로 ‘마크 트웨인 유머상’이다. 미국 현대문학의 아버지인 마크 트웨인은 우리에겐 ‘톰 소여의 모험’ ‘왕자와 거지’ 등으로 기억되지만, 미국 문학 역사에서는 최고의 촌철살인 풍자와 유머 작가로 꼽힌다. “유쾌하게 살자, 그래야 삶이 적막하지 않다”고 했던 트웨인은 “정치가들은 기저귀와 같다. 자주 갈아줘야 하기 때문이다” 같은 날카로운 풍자를 즐겼다. 그런 트웨인을 기리며 제정된 상은 촌평, 풍자와 유머로 사회에 좋은 영향을 준 인물에게 주어져 왔다. 이제까지 배우 우피 골드버그, 방송 진행자 제이 레노, 데이비드 레터맨 등이 마크 트웨인 유머상을 받았다.

‘기생충’과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수상 과정을 보면 봉 감독이야말로 풍자와 유머 면에서 당대 최고가 아닐까 한다. ‘1인치 (자막의) 장벽을 뛰어넘으면 훨씬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다’거나 ‘텍사스 전기톱으로 트로피를 5등분 하고 싶다’며 특유의 유머러스한 수상소감으로 시상식장을 가득 채운 할리우드 거물들을 쥐락펴락했다. 오스카 캠페인 기간에 그의 말대로 코피 흘려 가며 진행하는 600회가 넘는 인터뷰에서 “오스카상은 국제 영화가 아니라 로컬(Local)일 뿐”이라며 폐쇄적인 아카데미의 아픈 곳을 정확하게 지적하는 촌철살인의 발언으로 시간이 갈수록 대중적 인기를 높여간 것도 사실이다.

블랙코미디인 ‘기생충’에도 풍자와 유머가 가득하다. 봉 감독은 귀국 인터뷰에서 빈부 격차라는 현대사회문제를 1㎝도 피하지 않고 처음부터 엔딩에 이르기까지 정면 돌파하려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양극화라는 시대 문제를 건드리면서도 사이사이 웃음으로 긴장을 깼고, 치달아가는 스릴러에 코미디를 정교하게 결합했다. 이야기는 공포스럽게 치달아가다가 어이없는 웃음으로 긴장의 압력을 빼면서 현실 그대로의 재현이 아닌 완성도 높은 예술적 성취로 관객에게 다가갔다. 이 때문에 관객들은 바로 자신이 처한 세상과 세계 이야기를 보면서도 마치 다른 사람의 이야기인 듯 웃을 수 있었다. 블랙코미디 ‘기생충’을 두고 벌어지는 또 한 판의 블랙코미디이다.

봉 감독은 ‘기생충’이 전작보다 더 많은 관심을 받은 이유에 대해 “주변의 이야기였기에 폭발력이 있었다”고, “한국적인 이야기에 세계가 매료됐다”고 했다. 이 말에 우리 이야기가 전 세계 주류 문화의 풍경을 바꿔놓았다며 열광하지만 사실 ‘기생충’이 보여주는 ‘한국적인 것’은 열광의 대상일 수 없는 현실이다. 봉 감독의 말처럼 “분명히 능력 있는 사람들인데 일자리가 없는” 현실, 외신들이 앞다투어 주목한 반지하, 정치의 중심에서 버젓이 벌어진 졸업장 사기 같은 일들, 그리고 거짓말과 사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벌이는 무감각…. 봉 감독이 현실에 유머와 풍자를 섬세하게 더해 내놨다면 우리는 그 유머를 걷어내고 현실을 바라봐야 한다. 우리 영화가 세계 주류 문화의 오랜 벽을 넘어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사실에 감격하고 이를 기꺼이 즐기는 열광의 시간을 거쳐 이제는 우리의 이야기를 제대로 쳐다봐야 한다.
최현미

최현미 논설위원

문화일보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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